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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부조리한 현실·고통받는 개인…뮤지컬 '보이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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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진 연출로 세계 최초 뮤지컬 초연...엘지아트센터에서 11월8일까지 공연

보이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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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독일의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1813~1837)가 남긴 희곡 '보이첵'은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24세로 요절한 작가의 미완성 희곡이라는 후광을 걷어내고도, '부조리극의 시초',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가 주인공인 첫 희곡'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반영웅적·반귀족적' 인물을 내세워 사회구조의 모순을 드러내는 화법은 뷔히너의 대표작 '당통의 죽음'에 이어 '보이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의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보이첵'은 가난한 말단 군인이다. 심약한 성품을 가진 그를 동료 군인들은 늘 업신여긴다. 사랑하는 여인 '마리'와 갓난아기 '알렉스'와 함께 살고 있지만 돈이 없어 결혼은 꿈도 못 꾼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보이첵'은 매일 완두콩만 먹어야 하는 생체 실험에 자원한다. 거듭되는 비인간적인 실험과 학대에 '보이첵'은 영양부족에 정신착란 증상까지 보인다. 그러던 중 연인 '마리'와 군악대장이 부정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듣게 되자 '보이첵'은 더욱 심한 착란 증세에 시달리다, '마리'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이 작품은 소박한 꿈을 가진 한 소시민이 사회의 부조리 속에서 어떻게 파멸해 가는지 그 잔인한 과정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뷔히너는 전직 군인이었던 한 이발사가 동거하던 연인을 칼로 찔러 살해한 후 공개 처형당했다는 실화를 신문에서 접하고, 이를 작품으로 옮겼다. 하지만 이 희곡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뷔히너가 죽은 지 42년 후인 1879년에서였다. 훼손이 심한 상태로 순서가 뒤죽박죽인 원고를 다시 1913년 독일 연극의 거장 막스 라인하르트가 연극으로 만들었다. 강렬한 드라마와 묵직한 주제와 통찰력 때문에 이후에도 오페라, 영화, 무용 등 다양한 장르로 꾸준히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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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명성황후', '영웅' 등을 선보였던 윤호진 연출이 '보이첵'에 눈을 돌린 건 이런 보편성때문이다.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전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찾던 중 '보이첵'이 눈에 들어왔다. LG아트센터와 손잡고 세계 최초로 '보이첵' 뮤지컬 제작에 나섰다. 윤 연출은 "많은 연출가들이 한 번쯤 연출해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며 "'보이첵'과 '마리'와의 사랑과 갈등을 대사로만 전달하기 보다는 음악으로도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음악은 여러 번의 오디션을 거쳐서 영국의 언더그라운드 밴드 '싱잉 로인스'가 맡게 됐다.

지난 주 개막한 '보이첵'은 갈대숲과 2층 컨테이너 건물로 간결하게 무대를 꾸몄다. '보이첵'과 '마리'는 한 평 남짓의 좁은 건물에서 사랑을 속삭인다. 그로테스크한 무대 분위기가 작품의 상황과 잘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이 난해한 부조리극을 대형 뮤지컬로 성공적으로 재현해내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원작이 '보이첵'과 그를 둘러싼 주변의 부조리한 상황에 초점을 맞췄다면, 뮤지컬은 '보이첵'과 '마리'의 관계에 방점을 둔다. '보이첵'에게 가해지는 모든 폭력을 사회구조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적인 문제로 한정시킨 듯해 아쉬움이 남는다. 순식간에 루비 목걸이에 눈이 멀어 부정을 저지르다 다시 '보이첵'을 갈구하는 '마리' 캐릭터 역시 설득력이 약하다. 떠들썩한 마을 축제 장면은 엉성해 보이고, 난해한 스토리를 일일이 설명하는 뮤지컬 넘버(삽입곡)가 몰입을 방해한다.
다만 주인공을 맡은 배우 김다현은 '실제 '보이첵'이라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하는 감탄을 자아낸다. 공연에 앞서 연습 기간 때부터 일부러 체중을 감량했다는 김다현은 세상에 버림받고 한없이 망가져가는 '보이첵'을 앙상한 몰골과 힘없는 말투로 그려낸다. 후반부 그가 절규하며 부르는 '루비목걸이' 장면이 하이라이트다. 원작의 내밀한 심리묘사를 기대했던 관객들이라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새로운 창작극을 원하는 관객들이라면 찾을 만하다. 다음달 8일까지 한국에서 공연(서울 강남 LG아트센터)된 뒤 영국과 독일에서 현지 언어로 무대에 오른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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