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강남 개발이 시작될 무렵인 1970년대 전만 하더라도 봉은사 땅이었다. 봉은사는 보우대사와 서산대사, 사명대사 등 역사적인 승려들을 배출한 곳이다. 봉은사 땅 일대는 조선시대에 승과 고시를 치르던 승과평(僧科坪)으로 많은 고승을 배출한 불교계의 성지 같은 곳이었다.
당시 매매가격은 평당(3.3㎡당) 5300원이었고, 총 매매가는 5억3000만원이었다. 조계종은 옛 총무원 건물인 불교회관 건립과 동국대에 필요한 공무원교육원 매입을 위해 큰돈이 필요하게 되자 종단의 유휴지를 매각하려 했다.
이런 계획과 정부의 강남 개발 계획이 맞아떨어져 거래가 성사되면서 한국전력주식회사ㆍ대한석탄공사 등 상공부 산하 기관에 팔렸다. 1984년 서울 삼성동 167번지 토지는 한전의 소유가 됐고, 1987년 이 토지에 22층짜리 한전 본사 건물이 들어섰다.
이날 낙찰받은 가격은 3.3㎡당 4억3879만원, 10조5500억원이다. 30년이 지났지만 8만2500배가 넘는 가격에 팔리게 된 셈이다. 역대 단일 토지 거래가로는 최고가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현대차의 엄청난 베팅을 놓고 온갖 추측들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100년 앞을 내다보고 통큰 결단을 내렸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반면, 현대차가 무리한 투자로 승자의 저주가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한전 부지 매각전에서 특이한 점은 차점자로 탈락한 삼성에 대한 관심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의 입찰가를 놓고 5조 미만설부터 8조, 9조원설까지 확인되지 않은 추측들이 난무한다. 이는 현대차의 결단이 틀렸다는 부정적인 시각에서 나온 것들이다.
물론 수개월 후면 삼성이 얼마를 썼는지 알수도 있다. 공개된 금액을 보고 평가해도 늦지 않다는 얘기다.
드러난 삼성의 입찰가가 낮아도 현대차의 결단이 틀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현대차가 당장 몇 년 후를 보고 10조5500억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100년 앞을 내다 본 것이다.
과거 1970년대 봉은사가 정부에 한전 일대 땅을 팔았을 때도 이 일대가 금싸라기 땅이 될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삼성동 일대는 서울 사대문 안에서 가려면 마포나 뚝섬에서 배를 타고 가서도 한참을 걸어야 닿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오지였다.
지금은 코엑스를 비롯해 공항터미널, 무역센터, 아셈타워 등이 즐비한 핫 플레이스로 변모했다.
이제 이곳은 또 다른 변화를 앞두고 있다. 현대차가 이곳을 거대한 자동차 테마파크인 '아우토슈타트'로 만들 계획이다.
아울러 전시ㆍ컨벤션과 국제업무, 관광숙박시설도 들어설 전망이다. 현대차의 한전 부지 매입에 따른 부정적인 평가는 부러움에서 나온 걸로 보인다. 사촌이 땅사면 배아픈 거하고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쓸모없는 논쟁은 버려야 한다. 물론 현대차가 이 일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추진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과거에서 보듯이 현대차의 결단에 대한 평가는 30년 혹은 100년 후에나 내려야한다. sinryu007@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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