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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순방길에 나선 北의 강석주는 누구?

최종수정 2014.09.06 07:00 기사입력 2014.09.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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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에서 '전쟁'발언도 서슴지 않은 북한 외교의 제갈공명

[아시아경제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강석주 북한 노동당 국제비서가 6일부터 유럽 순방에 나섰다. 그는 북한 외교를 오랫동안 뒷받침해온 자타가 공인하는 외교통이다. 북한 외교의 제갈공명이라는 별명도 있다.

강석주 북한 노동당 국제비서

강석주 북한 노동당 국제비서



그는 지난 4월9일 최고인민회의(국회)에서 내각 부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그가 노동당 국제비서에 취임한 것은 나흘 뒤인 13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 확인됐다.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방북한 외교 인사들과 회담한 강석주의 직함을 당 비서로 소개하면서 북한 외교의 전면에 등장했다.

강석주는 1939년 평안남도 평원군에 태어났다.우리나이로 75세로 적지 않은 아니다.부친은 6.25전쟁 때 인민군 사단장으로 참전했다가 개전 초기에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게 맞다면 그는 북한에서 '열사자제'가 된다. 강석주는 평양외국어대학에서 영어를, 국제관계대학에서 불어를 각각 전공했다.

그는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1960년대에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유학했다. 이 때 영어 문법과 발음을 배우기 위해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중국 외교부장을 지낸 리자오싱과 기숙사의 한방을 같이 썼다.
그는 1980년 노동당 국제부 과장에 올라 1984년 외교부 부부장, 1987년 외교부 제1부부장,1998년 외무성 제1부상으로 각각 승진하는 등 외교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강석주는 2010년 내각 부총리에 임명돼 지난 4월까지 부총리직을 수행했다.

그는 1994년 6월 평양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김일성의 회담에 배석했으며 같은해 10월 로버트 갈루치 미국 핵대사와 '북미기본합의서'에 서명하는 협상주역을 맡았다. 이 합의서는 북한이 핵동결과 핵사찰·핵시설 해체 를 수용하는 대가로 경수로와 중유를 받고 북미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는 이 합의를 이끌어내 외교관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한 최고 영예인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아 입지를 굳혔다.

강석주의 단호함과 노련한 협상술은 1993년 6월 2일부터 11일까지 뉴욕의 유엔주재 미국대표부에서 진행된 제1차 북미고위급 회담 첫날 드러났다. 미국의 갈루치가 NPT 탈퇴를 취소하세요. 사흘 이내에 취소하지 않으면 무력행사카드를 배제하지 않겠다"고 말하자 강석주가 "그렇다면 사흘 뒤에 전쟁하자"는 말까지 즉석에서 서슴없이 던진 일화는 유명하다.

강 비서는 이후 대미협상과 핵·미사일 문제를 주도하는 ‘외교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2000년 10월 조명록 특사의 미국 방문시 수행했고 같은해 김정일과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 회담에도 배석했다.또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부시 대통령의 특사자격으로 방북했을 때는 농축우라늄 개발 의혹을 시인하라는 압력에 맞서 "우리는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질 수 있다"고 말해 제2차 북핵위기를 촉발시키기도 했다.

그는 또한 2009년8월 김정일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접견할 때와 만찬할 때도 배석하는 등 미국과 관련된 중요 자리에는 거의 빠짐없이 등장해 '외교실세'임을 대외에 과시했다.

지난 4월 노동당 국제비서로 자리를 옮겼을 때는 당 외교에 더 전념할 것으로 관측되기도 했다. 이번 그의 순방으로 이런 관측은 맞아떨어졌다.

그는 이번 순방국에서 핵과 미사일은 미국과 한국의 군사훈련에 대항하는 자위수단임을 강조하고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석주는 지난 7월 북한을 방문한 안토니오 이노키 일본 참의원에게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와 관련, "일본에 대한 시위가 아니라 “미국과 한국의 군사훈련 대한 대항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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