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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신사...전쟁미화 군국주의 상징시설

최종수정 2014.10.18 09:51 기사입력 2014.08.1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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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후루야 게이지(古屋圭司) 국가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 담당상과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총무상이 한국의 광복절이자 일본의 패전일인15일 참배한 야스쿠니(靖國) 신사는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시설이다.

◆전사자를 신으로 미화하는 야스쿠니 신사=일본 도쿄 한 가운데인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에 있는 최대 신사인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총리와 각료, 의원들이 잇따라 참배해 일본 국내의 비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한국 등 국제사회의 비판을 자초했다.

야스쿠니 신사의 전신은 도쿄 쇼콘사(招魂社) 신사로 황실이 참배하는 신사로 1869년 메이지 정부와 막부 간의 보신(戊辰) 전쟁에서 숨진 관군 병사들을 위령하기 위해 창설됐다.

10년 후 세이난전쟁 후 '야스쿠니 신사'로 개칭해 청일 전쟁 등 대외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들을 신이라며 제사했다. 여기에 천황 참배라는 특별한 대우를 하고 전몰자들은 생전의 잘잘못과 상관없이 신이 됐다며 예배를 하도록 함으로써 일본은 천황숭배와 군국주의를 고무시켰다.

2차 대전 종전까지는 육군성과 해군성의 관리하에 있었다.
야스쿠니 신사는 2차 대전 후 종교법인이 됐지만 일본 유족회 등은 이전과 같은 ‘국가수호’를 강력히 요구했다.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1969년 이후 ‘야스쿠니 신사 국가수호 법안’이 국회에 자주 제출됐다.

야스쿠니 신사는 도쿄 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분류된 도조 히데키 전 수상 등을 1978년 합사(合祀.함께 제사지냄)했다.

현재 청일전쟁, 러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에서 숨진 246만여명의 위패가 안치돼 있다.

◆일본 총리 누가 참배했나=일본 총리와 각료들의 참배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총리 자격으로 최초로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한 1985년 이후 중국은 A급 전범 합사를 이유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 총리를 맡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는 재임 중에 여섯 차례 참배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제2차 아베 내각 출범 1년을 맞은 지난해 12월 26일 수상 취임 이후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류코쿠(龍谷)대학의 히라노 다케시(平野武) 명예교수는 13일자 교도통신 기획기사에서 “군의 시설이라는 위상과 나라를 위해 전사하면 뛰어난 영혼인 ‘영령’이 되며 나라가 신으로 모신다는 것이었다"면서 "병사들의 사기를 고조시키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도통신은 야스쿠니 신사는 전쟁 수행을 위한 정신적 지주이자 군국주의의 상징이되었다고 비판했다.

히라노 교수는 “국가의 관여는 어떤 형태로든 용납되지 않으며 수상들의 공식 참배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고“야스쿠니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전후 민주주의에 의해서 실현된 정교분리
의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추도시설 논의 제자리걸음=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내각의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관방장관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정치 문제로 확대되자 1999년 8월의 기자회견에서 분사 검토를 주장했다. 재임 기간 중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남겨진 과제들을 해결하는 것에 의욕을 보였다.

야스쿠니 신사 측은 “한번 모신 영령들을 분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분사 요청은 헌법이 규정한 정교분리의 원칙에 저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야스쿠니 신사의 자발적인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01년 8월에는 고이즈미 당시 총리가 신사를 참배해 다시 문제가 불거지자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당시 관방장관은 전문가 간담회를 설치했으며 이 간담회는 2002년 12월, 종교와 관계가 없는 국립 추도시설 건설을 제언했다.

이 제언에 따르면 새로운 추도시설은 도쿄의 히비야 공원(日比谷公園)이나 신주쿠 교엔(新宿御苑) 등을 염두에 두고 ‘밝고 공원 같은 분위기의 장소’에 설치한다는 구상이었다.

추도 대상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관여한 전쟁의 전몰자’로 삼는 한편, 구체적으로 누구를 추도하는지는 개인에게 맡긴다는 내용이다.

자민당과 일본 유족회는 “야스쿠니 신사의 의미가 사라진다”며 반발했다. 고이즈미 총리도 “새로운 시설이 생겨도 야스쿠니 신사는 존재한다”고 밝히며 수상 직에서 퇴임한 2006년까지 매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계속했다.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는 추도의 중심적인 시설”며 새로운 추도시설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부총리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재무대신은 2006년, 야스쿠니를 종교법인에서 특수법인으로 바꿔 사실상 국영화하는 개인의견을 발표했다.

자민당측은 새로운 추도시설을 “경청할 가치가 있다"고 밝히고 있고 연립 여당인 공명당도 찬성하고 있지만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고 교도통신은 꼬집고 있다.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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