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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천사는 어디가고 당신은 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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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드세요?"

아득한 곳에서의 울림이 문득 의식을 깨운다. 순간 눈앞이 희미해지면서 정적이 뒷걸음친다. 심연에서 의식이 빠져나오자 사람 형상이 일렁인다. 뉘신지? 소리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한다. 아직은 초점을 잃은 시선이 형상을 힘겹게 붙들 뿐이다. 그 형상은 웃는 것도 같고, 걱정스레 나를 바라보는 것도 같다. 천사인가. 다시 묻는다. 뉘신지? 입술이 달싹거리지만 소리는 여전히 입안을 맴돈다.
"선생님, 정신 차리세요."

두 번째 울림에 의식은 좀 더 선명해졌다. 마비된 지각이 회복되면서 비로소 현실이 달려들었다. 여기는 병원, 나는 침대에 누워 있다. 아 참, 수면내시경을 했지! 약간의 어지러움은 그 후유증이다. 컬컬한 목의 통증은 같은 알리바이다. 그러니까 좀 전의 기이한 경험은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건너오면서 마주한 몽환적 체험이었던 게다. 짧은 이 순간 사람들은 별의별 경험을 한다고 들었다. 누구는 천사와 조우하고 또 누구는 첫사랑을 만나고. 어느 몰상식한 인간은 "아가씨, 여기 한 잔 더"라며 추태를 부렸다는 우스갯소리도.

수면내시경을 받을 때 흔히 마취상태로 알고 있지만 의식이 잔류하는 '진정된 상태'에서 진행된다. 그래서 의료진이 '옆으로 돌아 누우세요'라고 말하면 고분고분 따른다(의식이 있으니). 하지만 신기하게도 회복실에서 한숨 자고 나면 모든 기억이 방전된다. 그 바람에 의식이 돌아오는 순간 유별난 체험과 마주 선다. 먹고 싸는 신체 기관을 검사하는 극현실적 상황이 상상 밖의 초현실적 경험으로 치환되는 아주 특별한 경험인 게다.
무릇 극현실과 초현실의 간극이 클수록 여운은 깊다. 삶의 무게만큼 도피의 욕구가 짜릿한 것도 그래서다. 살다 보면, 차라리 꿈이었으면 바란 적이 얼마나 많은가. 시험에 떨어진 수험생, 주식을 날린 투자자, 애인에게 차인 슬픈 청춘. 얼마 전 월드컵에서 7대1로 대패하는 순간 브라질 국민들도 그러했으리라. 어서 이 악몽에서 깨어났으면, 하고.

하지만 꿈의 소등은 현실의 점등이다. 꿈이 아무리 달콤해도 현실만이 우리를 존재케한다. 회복실 침대에 누워 애써 눈을 감는다고 시간이 멈출 것도 아니고, 저 아름다운 천사와 영원히 마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가장 생존적인 주문이다. 고백건대, 나를 깨운 현실 속의 간호사도 꿈결 속의 천사가 결코 아니었다.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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