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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게임은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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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등학교 시험 문제다.

'최근 청소년들의 폭력 관련 범죄 발생률이 높아지고 있는데 청소년의 폭력성을 높이는 주요 원인을 한 가지 이상 서술하시오.'
학생은 '과도한 학업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지 못해서'라고 적었다. 결과는 오답. 교사는 빨간펜으로 정정했다. '게임 등에서 폭력적인 영상을 계속 접촉했기 때문'. 청소년 폭력의 원인을 숨막히는 학교에서 찾는 학생, 폭력 게임 때문에 학생들이 난폭해졌다고 걱정하는 교사. 이 간극은 '게임의 두 얼굴'이 충돌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이번에는 강원도 일반전초(GOP)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이다. 가해자 임모 병장이 관심 병사였다는 사건의 전말은 급기야 '게임'으로 불똥이 튀었다. 황진하 국회 국방위원장(새누리당)은 최근 토론회에서 "임 병장이 게임 중독에 빠져 자기만의 세계에 살다 보니 군대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전우들과 어울리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이 토론회 주최자는 손인춘 의원(새누리당)이다. 게임 업체로부터 매출 1%를 인터넷 게임 중독 치유 기금으로 거두자는 내용의 이른바 '손인춘법'의 주역이다. 같은 당 신의진 의원은 게임을 알코올ㆍ마약ㆍ도박과 묶는 '4대 중독법'을 추진하고 있다. 청소년의 온라인 게임 접속 시간을 제한하는 후진국형 '셧댜운 제도'는 여성가족부가 주도했다.

게임의 폭력성을 입증하려는 일부 언론의 노력도 가상하다. MBC 뉴스는 PC방 전원을 갑자기 끊어 그 순간 터져 나온 거친 반응들을 폭력성의 증거로 내세웠다. KBS 뉴스는 폭력적인 게임이 식욕과 혈압 상승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례를 보도했다. 게임에 대한 정부와 여당, 일부 언론의 불편한 심기는 빨간펜 교사의 또 다른 얼굴이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는 논리적 허점이 많다. 황 위원장의 질타는 게임 이전 세대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했던 군내 총격 사건을 설명하지 못한다. MBC의 깜짝 실험에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마감을 막 끝내는 MBC 기자의 노트북 전원을 누군가 끈다면 그 기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부처처럼 웃고만 있을까?' KBS 실험도 '운동 부족으로 살이 붙어 통통한' 피시험자를 사전에 섭외해 객관성을 상실했다.

지나친 비약과 과장이다. 그런 식이라면, 이런 얼치기 주장도 가능하다. 1. 불륜이 소재인 '사랑과 전쟁' 드라마를 자주 보는 부부는 불륜을 저지른다. 2. 소매치기들은 오토바이를 이용하므로 오토바이는 공범이다. 3. 테트리스 게임을 많이 하면 훌륭한 건축가가 된다. 그러니 사랑과 전쟁을 당장 종방시키고 전국의 오토바이를 압수하고 테트리스 게임을 학과 수업으로 채택해야 할까.

미국의 과학적 접근을 빌려보자. 뇌 과학분야 전문가인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제이 기드 박사는 "폭력적인 것을 많이 보면 폭력에 대해 감각이 무뎌진다"는 견해를 내놨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곧 범죄로 이어진다는 시각을 경계했다. 텍사스 A&M 국제대학의 크리스토퍼 J 퍼거슨 교수는 비디오 게임의 폭력성이 청소년 폭력과 상관관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올해 초 발표했다. 미국 연방대법원도 게임이 청소년에 가져오는 해로운 점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재로서는 게임의 폭력성이 현실의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다. 게다가 게임은 산업이다. 박근혜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창조경제의 핵심이다. 산업을 육성한다면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다시 고등학교 시험 문제로 돌아와, 청소년 폭력의 원인은 학교 문제이거나 가정 문제이거나 친구 문제이거나 복합적이다. 결국은 사회 문제다. 어른들의 책임이다. 그 잘못을 게임에 뒤집어씌우는 꼴이다. 게임이 없던 시절에도 폭력은 존재했다. 점잖은 체하는 어른들의 이중성이 청소년들에게는 더 폭력적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게임은 무죄다.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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