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축구의 심장, 등번호 10번의 계보학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아르헨티나는 2014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부터 준준결승까지 다섯 경기를 모두 이겼다. 리오넬 메시(27·FC 바르셀로나)가 굳건히 팀을 이끌었다. 그는 위대한 10번의 전통을 잇고 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우승의 주역 마리오 켐페스(60),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최우수선수(MVP) 디에고 마라도나(54), '작은 당나귀' 아리엘 오르테가(40), '마법사' 후안 로만 리켈메(36·보카 주니어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들을 '엔간체(Enganche)'라고 부른다. 아르헨티나는 통산 세 번째 우승을 위해 메시의 마법이 두 번 더 필요하다.
짧게, 그러나 눈부시게 달린다
아르헨티나는 '메시 유나이티드'다.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그런데 기록상 메시의 활동량은 많지 않다. 다섯 경기에서 41.4km, 경기당 8.28km를 달렸다. 전체 64위다. 팀에서 가장 많이 뛴 하비에르 마스체라노(30ㆍFC바르셀로나·53.8km)보다 12.4km나 덜 뛰었다. 파블로 사발레타(29ㆍ맨체스터시티·52.7km), 에세키엘 가라이(28ㆍ벤피카·51.2km), 앙헬 디마리아(26ㆍ레알 마드리드·45.8km), 곤살로 이과인(27ㆍ나폴리·45.7km), 마르코스 로호(24ㆍ스포르팅 리스본·44.8km) 등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비에 거의 가담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전방의 이과인이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어게인 1986?
2006년 독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메시의 활약은 미미했다. 골은 한 개 뿐이었다. 아르헨티나는 각각 준준결승과 16강에서 탈락했다. 2011년 알레한드로 사베야(60)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움직임은 달라졌다. 2006년부터 6년 동안 쉰아홉 경기에서 열아홉 골에 머물렀지만 사베야 감독이 부임한 뒤 스물아홉 경기에서 스물여섯 골을 넣었다. 경기당 0.89골로 FC 바르셀로나에서 기록한 0.88골(277경기 243골)을 뛰어넘는다. 사베야 감독은 부임하면서 "메시를 중심으로 팀을 짜겠다"고 했다. 마스체라노 등 미드필더들에게 많은 활동량을 주문하면서 메시의 '한 방'을 기대했다.
상황은 마라도나를 앞세워 우승한 1986년과 여러 모로 흡사하다. 당시 카를로스 비야르도(75) 감독은 철저하게 실리축구를 했다. 유럽의 3-5-2 전술을 받아들여 플레이메이커 중심으로 팀을 운영했다. 마라도나에게 패스하는 것이 동료들의 임무였다. 최전방의 호르헤 발다노(59)와 호르헤 부루차가(52) 역시 마라도나의 보조역이었다. 적극적인 수비 가담으로 마라도나의 공백을 메웠다. 천재적인 플레이메이커로 평가받은 리카르도 보치니(60)는 포지션이 겹쳐 아예 뛰지도 못했다.
마라도나는 신들린 듯했다. 상대의 집중 견제를 받으면서도 다섯 골을 넣었다. '신의 손' 사건으로 유명한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는 중앙선 부근에서부터 수비수 여섯 명을 제치고 골을 터뜨리기도 했다. 아르헨티나는 28년 뒤 똑같은 실리축구로 우승에 도전한다. 선수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가고는 "메시는 세계 최고의 선수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그를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과인은 "메시에게 관심이 쏠렸다고 해서 내 실력이 줄지는 않는다"고 했다. AFP통신은 6일 "이과인이 발다노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발다노는 1986년 월드컵 우승 당시 서독과의 결승전 골을 포함해 네 골을 기록, 마라도나와 함께 팀 공격을 책임졌다. 이과인은 아직 다섯 경기에서 한 골밖에 넣지 못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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