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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 동네축구는 이제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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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멀리 남쪽 전라남도 장흥군에 있는 작은 학교였다. 학교 주변에는 탐진강이 흐르고, 1급수에만 산다는 은어가 강물 위로 뛰어올라 저녁 노을에 비늘이 반짝이곤 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항상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해가 질 때까지 공을 차고 놀았다. 축구를 할 때면 처음에 시작할 때는 누구는 공격수, 누구는 수비수 등등 역할을 정하지만 어느새 자신의 포지션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골키퍼만 빼고 우리 편도 상대 편도 모두 공 있는 곳으로 몰려 다니는, 누구나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동네 축구였다. 한 골을 먹으면 "왜 수비수가 공격을 하냐"고 서로 언성을 높이고, 자기 자리를 잘 지키자고 다짐하지만 이런 다짐이 지켜진 적은 없다.

이런 동네 축구는 프로축구의 세계와 거리가 멀기는 하다. 화려한 개인기를 자랑하는 남미축구건, 조직력으로 승부하는 유럽축구건 선수들은 조직적인 팀워크로 상대팀을 압박한다. 물론 동네 축구가 항상 열등한 것은 아닐 것이다. 만일 양 팀 선수들의 기량이 동등하다면 상대편 골문 근처에 골키퍼를 뺀 10명이 포진해 수비수와 육탄전을 벌일 경우 100%의 확률로 골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 수비수가 공을 걷어내 우리 진영으로 공이 날아온다면 역시 거의 100%의 확률로 골을 먹게 되어 있다. 골키퍼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곳에 상대편 공격수 서너 명이 달려온다고 생각해 보라. 이처럼 동네 축구는 단기적 응집성은 강하지만 변화에 대한 대응력이 약하다.
지금 한국과 미국, 일본 같은 선진국의 사회 시스템을 비교하면 동네 축구와 프로축구의 차이가 드러난다. 한국 사회는 단기적 응집성이 강하며 트렌드에 대단히 민감하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보급률을 보면 한국은 67.6%로 세계 평균의 15%에 비하면 4.6배이며, 2위인 노르웨이 55%, 3위 일본 40%에 비해서도 크게 높다. 스마트폰 등장 후 불과 3년6개월 만의 사건이다. 기술경영의 대가인 후지모토 다카히로 도쿄대 교수는 이런 한국인의 집중력에 대해 "일본인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무서운 응집력"이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응집력의 이면에는 동네 축구와 같은 치명적인 약점이 도사리고 있다. 공이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것과 같이, 상황이 급변하면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번 세월호의 비극도 마찬가지였다. 수백 명의 어린 학생들의 목숨이 일분일초를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해상 재난 전문가도, 변변한 장비도 없었다.

재난 전문가는 평시에는 전혀 쓸모가 없는 사람이다. 평상시에 이들에게 투입되는 비용은 말 그대로 '예산 낭비'로 감사원에서 지적받기 딱 좋다. 그러나 1년에 한 번, 아니 10년에 한 번이라도 재난이 발생하면 이들은 능력을 발휘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는 번역 전문가도 없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미국 소설의 전문번역가이기도 하다. 그는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유명한 제롬 데이비스 샐린저의 소설 '프래니와 주이'를 번역하고 있다고 밝혀 독자들을 놀라게 하기기도 했다. 한국의 유명 작가가 번역이나 하고 있다면 비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동네 축구는 후진국이 선진국을 캐치업할 때 사용하는 전략이다. 60~70년대 한국의 경제 개발 전략이 여기에 해당하고 구 소련의 스탈린이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 사용한 중공업 집중 전략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혁신이 요구될 때는 무용지물이다.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데 한 군데에만 사람들이 몰려 있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제 한국은 동네 축구에서 조직 축구로 진화해야 할 때다. 필요할 곳에 필요한 인재가 존재하는 사회, 필요하다고 예측되는 곳에 인재가 준비되고 있는 사회, 이런 전문가들의 결합체로서의 한국 사회로 진화해야 할 시점이다. 국가적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전문가가 없다고 언제까지 한탄할 것인가.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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