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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클릭]'엄마'보다 '아파'란 말 먼저 배운 백혈병 성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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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되고 싶은데…

성찬이(가명)가 백혈병 진단을 받기 전 사진

성찬이(가명)가 백혈병 진단을 받기 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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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성찬이(26개월ㆍ가명)는 중국 지린(吉林)이 고향이다. 성찬이네 가족은 중국 동포다.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걸었던 성찬이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가 나오면 '할무이 춤춰'라며 방긋 웃던 아이였다. 그렇게 일찍 발을 뗐던 성찬이는 지금 걷지 못한다. 골수염이 다리까지 번지면서 조그만 충격에도 다리뼈가 부러질 수 있다는 의료진의 판단 때문이다.

성찬이는 지난해 7월 림프종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백혈병 확진을 받기 전 팔에 금이 갔고 병원에 다녀온 이후 계속 열이 펄펄 끓었다. 20일이 지나자 팔이 시커멓게 변했다. 골수염이 온 것이다. 큰 병원이 있는 상하이(上海)로 가 초음파를 찍었더니 배에 림프종이 2개나 있었다. 상하이에서 치료가 어렵겠다고 판단한 성찬이네는 친인척에게 2000만원을 급히 얻어 올 2월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왔다.
지난달 17일 만난 성찬이는 한국말로 '아파'를 연신 외치고 있었다. '엄마' '아빠'란 말 대신 '아파'란 말부터 먼저 배웠다. 성찬이 엄마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젖꼭지를 물렸다. 성찬이는 이날 4번째 골수 채취 검사를 받았다. 성찬이 할머니는 "바늘이 손자 몸을 찌를 때마다 송곳으로 내 가슴을 찌르는 것 같다"고 했다.

◆처음 본 한국인들이 베푼 친절에 감동= 성찬이 부모님은 한국어가 서툴다. 그나마 할머니는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한국 물정을 모르다 보니 멸균 마스크를 어디서 사야 하는지 등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우왕좌왕하고 있는 성찬이 가족에게 같은 소아암 병동에 있는 환우 보호자들이 힘이 됐다. 한국소아암백혈병협회에 성찬이를 추천한 것도, 희망품목에 기저귀, 유모차, 소독기, 공기청정기 등을 써넣으라고 권유한 것도 이들이었다. 외부 균에 유독 약한 백혈병 환자에게 소독기와 공기청정기는 필수품이다.

중국에서 사업체를 운영했던 김모씨도 성찬이네 가족에겐 고마운 존재다. 김씨는 중국에서 회사를 운영할 때 성찬이 사촌이 근무한 업체의 사장이었다. 한국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보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촌이 김씨에게 전화를 넣었다. 김씨는 선뜻 생면부지의 성찬이네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수차례 병문안을 와서 가족에게 밥을 사며 위로해 줬다. 이날도 김씨는 구형 휴대폰으로 중국에 있는 친인척과 연락하던 성찬이 할머니를 위해 스마트폰을 개통해 가져왔다.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에선 무료로 국제전화가 가능한 애플리케이션도 깔아 줬다. 휴대전화 요금은 김씨 본인 통장에서 자동이체로 빠져 나가도록 설정해 뒀다. 선의에 보답할 길이 없는 할머니는 이날 김씨에게 "감사합니다"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경찰 된 손자 모습 보는 것이 소원= 성찬이 할머니는 이날 병원비 영수증 2장을 들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있었다. 영수증에는 각각 40여만원과 290여만원이 찍혀 있었다. 하루에 300만원이 넘게 병원비가 나오자 성찬이 가족은 망연자실했다. "영수증을 보면 숨이 꽉 막히고 병원에 오는 게 무서워요." 영수증을 꼭 쥔 할머니 손이 덜덜 떨렸다.

성찬이는 의료보험혜택을 받지 못한다. 내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병원비 전액을 내야 한다. 지금으로선 의료비자를 취업비자로 바꾼 뒤 4대 보험 혜택을 받는 회사에 취직하는 게 병원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신촌에 마련된 세브란스병원 쉼터에서 생활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성찬이네 가족은 한국에서 소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친척들이 "힘들면 포기하고 돌아오라"고 하는 말이 제일 듣기 싫다. 병원 영수증을 보면 막막하지만 건강했던 성찬이 사진을 보면 포기란 생각이 쏙 들어간다. 성찬이가 백혈병을 이겨내고 잘 자라 경찰이 된 모습을 보는 것이 할머니 소원이다. 성찬이는 아프기 전에 경찰차를 가지고 노는 것을 유독 좋아했다.

"아침에 눈 뜨면 아(성찬이)가 방긋 웃어요. 얼른 우는 모습 말고 웃는 모습을 보고 싶지요." 소아암 병동 복도를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다른 환우를 보는 할머니의 눈에 부러움과 희망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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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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