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설치미술작가 최정화의 소쿠리가 층층이 무대 위에 솟아있다. 민트색 소쿠리는 상하로 맞닿아 거대한 탑처럼 쌓아 올려졌다. 이를 뒷배경으로 삼아 6명의 무용수들이 격하고 때론 부드러운 온갖 몸짓을 선보인다. '뺘샤~', '안아줘', '미안해'라는 춤꾼들의 괴상한 대사는 쌩뚱 맞으면서도 측은하다. 무대미술이 된 소쿠리 한 켠엔 조명을 받은 큰 벌레와 작은 벌레가 등장한다.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듯이, 약자가 강자를 무너뜨리듯 이 벌레들은 "절대적인 좌도 우도, 보수도 진보도 없는 세상사"(안무가 박나훈)를 상징한다.
독특한 무대미술과 함께 이 공연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커뮤니티 댄스'다. 최근 무용계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관객 참여형 댄스'다. 갑자기 두 남자 무용수가 관객석을 향해 뛰쳐나가더니 몇 명 관객을 끌어내 공연장 아래층인 로비에서 연기를 펼친다. 따라 나선 관객도 배우의 몸짓과 음악에 맞춰 몸을 맞대고 껴안고 밀치는 춤꾼으로 변신한다. 공연장 무대는 어느새 2층 '로비무대'를 상영하는 스크린으로 바뀌었다.
플라스틱(최정화의 소쿠리 작업), 몸(무용수와 관객), 공기(꽃잎 모양으로 변신하는 이불), 배추. 박나훈 무용단이 최근 '네 가지 요소'란 공연에서 선보인 소재들이다. 이 공연은 ▲두 개의 문 (2010년 모다페 초청공연) ▲세 개의 공기 (2005 제8회 평론가가 뽑은 젊은 안무가전 최우수안무가 선정) ▲배추생각(2009 아르코초이스 선정,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모르는 두 남자 만지기 (2013 서강대학교 메리홀) 등 안무가 박나훈의 네 가지 작품을 재창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박나훈을 비롯해 김모든(김범호), 정수동, 강요섭, 이효선, 이종화 등 무용수들이 등장했다.
이 공연에 대해 평론가들은 뭐라고 평가했을까. "공공의 장소에서 타인과의 접촉을 예술적으로 환기시킨 작품"(김희진), "무대에 배추를 들고 나온 박나훈의 일상의 미(美)에 대한 반미학(反美學)의 주장이 웃음을 짓게 한다"(김경애).
안무가 박나훈은 그동안 현대설치미술과의 협업, 장소특정적 공연 등을 통해 현대무용을 기반에 둔 사실주의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2004년 평론가가 뽑은 최고안무가상을 수상하면서 두각을 보인 이후 국제적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는 싱가포르 ODT 댄스 컴퍼니 DanzINC과의 공동제작, SID Festival 한-베를린 공동제작 공연을 계획 중이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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