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정'으로 돌아와, 우리 기업이라면 수장이 1년 전 자신의 은퇴를 예고하는 일이 가당키나 할까. 이왕에 물러나기로 했다면 서둘러 후임을 물색하지 않을까. 저러고도 조직이 무사태평일까. 온갖 상념이 날뛰다가 문득 이 가정의 진원지인 '연말연시 인사철'로 촉수가 쏠린다. 작별하는 자와 금의환향하는 자의 행보가 교차하는 소란스러운 풍경은 올해도 어김없다.
KT와 동변상련인 포스코도 후임인선을 고심하고 있다. 승계협의회에서 CEO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내정자를 선임하는 수순이다. 현재로선 내년 언제쯤일지 짐작하기 어렵다. 정준양 전 회장이 지난달 15일 사임했으니 KT보다는 후임 결정이 더디지만, 역시 누군가는 주총까지 내정자 신분으로 '포스코 OOO호'를 이끌 것이다.
내정자가 주총에서 부결된 전례가 없다보니 '내정자 = CEO'라는 인식도 지나친 오류는 아니다. 하지만 주총에서 등기이사가 된 후 이사회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돼야 비로소 '내정자 = CEO' 함수가 완성된다. 그전까지 내정자의 활동은 비공식적일 뿐이다. 이런 비공식적인 행위를 공식화하려는 것은 조직의 위기감이요 생존의 절박함이다. 여기에 그룹 총수의 힘이 작용하기도 한다.
흔히 경영을 계주에 비유한다. 계주에서 바통을 어떻게 넘겨받느냐가 승패를 결정하듯 기업 경영도 '부드러운 이행(smooth transition)'을 거쳐야 한다고 김상훈 서울대 교수(경영대)는 역설한다. "경기에서 바통을 잘 받으려면 넘겨주는 선수(전임)와 넘겨받는 선수(후임 또는 내정자)의 달리는 속도가 일치하는 지점이 필요하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아이젠하트 교수도 '벼랑에서의 경쟁(Competing on the Edge)'에서 비슷한 맥락을 짚었다.
애플이 스티브 잡스에서 팀 쿡으로, MS가 빌 게이츠에서 스티브 발머로 권력 이양이 무난히 이뤄진 것은 '속도가 일치하는 지점'을 놓치지 않은 덕분이다. 지금 MS는 다시 그 지점을 찾는 중이다. 내정자는 바통을 너무 빠르거나 늦게 받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바통을 제대로 넘겨주기는 하는 걸까. 혹시라도 땅에 떨어진 바통을 집어들고 뛰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는 번번이 패할 수밖에 없다. 전임과 후임이 함께 뛰어야 하는 것이다.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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