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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노새와 우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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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카이스트 교수

김소영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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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졸업 후 미국 플로리다 어느 대학에 조교수로 임용된 첫해 여름방학에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 발사를 실제 구경한 적이 있다. 예정된 발사 시각은 오전 10시30분. 차로 4시간 걸리는 곳에 살고 있어 아침 6시쯤 출발해도 되었지만 새벽 3시에 잠이 곤히 든 애들을 깨워 집을 나섰다. 2003년 컬럼비아호 공중폭발 사고로 우주왕복선 발사가 중지된 지 2년반 만에 재개된 것이라 구경 인파로 센터 주변 고속도로 교통체증이 심할 것이었다.

다행히 2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가까이 관람할 수 있는 곳은 발사대에서 8마일가량 떨어진 잔디밭이었다. 발사 시각이 다가오자 커다란 전광판에 발사대 앞 VIP석에 영부인, 주지사가 자리 잡는 모습이 나왔다. 드디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그 때 난생 처음으로 '지축을 흔드는' 소리를 들었다. 발사대에서 한참 떨어져 있음에도 발밑으로 어마어마한 흔들림이 전해졌다.
갑자기 뭔가 하늘로 푹 솟아오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 사라져버렸다. 너무 순식간에 사라져서 기운이 쭈욱 빠졌다. 10초도 안 되는 이 순간을 보려고 새벽부터 달려왔다니. 그 때 뒤에서 나처럼 망연자실한 미국 꼬마애가 자기 아빠한테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 아빠가 대답하길 "인생에서 결국 중요한 순간은 10초도 안 된단다".

1969년 최초의 달 착륙 유인우주선 아폴로 11호 발사 때는 우리가 달렸던 케네디센터 주변 고속도로에 백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전 세계 7억명이 TV 발사 중계를 시청했는데 당시 TV 보급률을 생각하면 선진국 사람들은 거의 모두 지켜보고 있었던 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발사 전날 노새들이 이끄는 마차를 앞세운 시위대가 당시 토마스 페인 미 항공우주국(NASA) 국장 면담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대표자는 그 전 해 암살당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후임인 랄프 애버내시 목사였다.

그는 달 탐사에 들어가는 막대한 돈과 기술을 헐벗고 굶주린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 대치 상황은 참으로 영화 같았다. 발사대에 세워진 새턴 로켓이 최첨단의 거대 과학기술을 상징한다면 마차를 끄는 노새들은 빈곤의 수렁에서 좀체로 헤어나오지 못하던 당시 미국 인구 5분의 1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페인 국장은 시위대를 물리치는 대신 대화에 응하며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만약 로켓발사를 포기함으로써 빈곤을 해결할 수 있다면 내일 발사 버튼을 누르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NASA의 온갖 첨단기술 개발의 어려움도 우리가 당면한 가난과 불평등의 문제에 비하면 어린애 놀이에 불과합니다." 페인 국장은 NASA에서도 앞으로 빈부 격차, 실업, 인종차별 등 사회적 난제 해결에 힘쓰겠다고 약속하면서 대신 시위대에게도 다음 날 떠나는 우주인들의 안전을 기원해 달라고 했다. 페인 국장은 발사 당일 VIP석에 시위대 40여명의 자리를 마련해주었고 이들은 ('위대한 사회'라는 대대적인 빈곤퇴치 프로그램 주창자인) 린든 존슨 전 대통령과 함께 발사 장면을 지켜보았다.

중국은 15일 달탐사선 '옥토끼' 착륙에 성공하여 미국, 소련에 이어 세 번째로 달에 착륙한 나라가 되었다. 물론 유인 달 착륙은 아직까지 미국이 유일하다. 우리나라도 2020년 달탐사선 발사 계획을 세우고 최근 15개 출연연구소들의 협업연구에 착수했다. 단언컨대 앞으로 달 탐사계획에서 부닥칠 정말 어려운 문제는 페인 국장의 말처럼 기술개발이 아니라 왜 달에 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일 것이다. 실제 의회 예산 심의 때마다 지긋지긋하게 NASA를 괴롭힌 것은 "지구 문제도 해결 못하면서 왜 우주로 나가려고 하냐"는 질문이었다.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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