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길 잃은 천사들에게 바친 헌사'..최인호 '별세'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영원한 청년 작가' 최인호가 25일 별세했다. 향년 68세. 사인은 5년전 발병한 침샘암이다.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문학, 예술계는 물론 수많은 시민들도 슬픔을 토로하는 등 애도의 물결이 넘치고 있다. 26일 아침에도 빈소가 마련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는 그를 추모하는 작가, 예술인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 빈소를 들른 한 시민은 "우울하고 막막했던 70년대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큰 위로를 줬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기도 했다.
투병 중에 산문집 '하늘에서 내려온 빵', '최인호의 인연','천국에서 온 편지' 등을 내놓았고 이태전에는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로 문학적 건재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완서 선생은 타계하기 직전 자신도 병마와 싸우면서도 최인호의 발병 소식을 듣고는 "우리 인호가 아파서 어쩌면 좋냐"며 그의 안위를 더 걱정했을 만큼 아꼈다. 김영현 작가는 "그의 글은 따뜻하고 잔잔했다. 평생 동안 붓을 놓지 않았던 고인은 작가정신의 귀감"이라며 "비록 현실과 정면으로 싸우진 않았더라도 세상의 약자와 번민하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준 문학계의 별"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은 "작가와는 종종 집필실이 있던 서울 동숭동 샘터 계단에 앉아 얘기를 하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며 "평생 다른 직업 없이 소설가로서의 외길을 추구한 삶은 문인 후배들이 본받을 만 하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대중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확보한 것은 문학계안에서도 높이 평가할만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소설가 이외수도 트위터를 통해 "소설가 최인호, 향년 68세로 별세. 천재성이 번뜩이는 작품들을 많이 쓰셨지요. 아직 더 활동할 수 있는 나이인데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메시지로 슬픔을 토로했다.
평소 최인호는 글쓰기에 몰두, 문단과의 교류는 많지 않았다. 실제로 소속된 문학단체는 없었다. 작품 활동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벽구멍으로'가 가작 입선되면서 시작했다. 당시 교복 차림으로 나타나 시상식에 나타나 주변을 놀래킨 일화는 지금껏 문단에 회자되는 일화다. 4년 후엔 군 훈련 도중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견습환자'로 당선되기도 했다.
제대 후 단편소설 '모범동화', '술꾼' 등을 내놓아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을 이을 것이라는 기대와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술꾼은 아주 특이한 성장소설로 평가된다. 어린아이가 밤늦게 아버지를 기다리느라 골목길을 서성이는 걸 안타깝게 여긴 어른들이 한두잔씩 술을 권하고, 아이는 점차 술꾼이 되어가는 내용이다.
이후 '별들의 고향'을 기점으로 최인호는 '대중소설가'라는 비판도 따라 붙었다. 이어 '도시의 사냥꾼', '불새', '겨울 나그네' 등 도시적 감수성을 그려 독자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문학 붐을 일으켰다. 70년대 산업화와 도시 집중, 이농 등 농촌 붕괴, 군사 독재가 판치는 시절, '우울', '번민', 방황'이라는 사회적 병리에 갇힌 청년들의 고뇌를 김수성 있게 그려냈다.
'바보들의 행진' '병태와 영자' 등 영화 시나리오를 통해 영화 등 다른 장르에도 큰 활력을 불러 일으켜 '70년대 청년 문화의 원류'리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가톨릭 세례를 받으면서 문학적 전환점을 이룬다. 이후 '잃어버린 왕국', '길 없는 길', '상도', '해신','유림' 등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을 주로 썼다.
올해 초 한 때 병세가 호전되는 모습을 보이자 '암은 고통의 축제'라며 투병기를 쓰는 등 삶의 열정을 불사르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추석 당일 서울성모병원에 입원 뒤 일주일만에 눈을 감았다. 장지는 분당 메모리얼 파크다. 발인은 28일 오전 7시30분이다. 발인 직전 장례미사가 명동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집전으로 치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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