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렬히 일하던 '성과주의'가 이만큼 발전시킨 것
보상시스템 안 되면 일할 맛 사라져
▲정구현 KAIST 교수가 추석 연휴 전 종로타워 22층 서울국제포럼 사무실에서 이의철 정경부장과 만나 "한국경제가 60년간 압축성장을 할 수 있었던 비밀은 성과주의였다"며 "일 잘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을 주는 '성과주의' 원칙이 훼손되면 향후의 성장동력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강조하고 있다.
[대담=이의철 정경부장 겸 금융부장] "한국경제가 반세기 동안 압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부지런히 일하고 공부하면 잘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더 열심히 하고 더 잘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이 뒤따르는 '성과주의'의 가치관을 앞으로도 절대 놓쳐서는 곤란합니다."
정 교수의 말처럼 한국경제는 지난 60년 동안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압축 성장을 일궈냈다. 하지만 면면을 들여다보면 어두운 구석도 있다. 자살률은 OECD 최고수준을 기록하고 있고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사회계층의 불균형도 심화됐다.
정 교수는 "성과주의라는 가치관으로 경제를 일으켰지만 비효율적인 고비용구조가 성장활력을 가로막고 있다"며 이런 현상이 좋은 인재들을 창업보다 대기업에 취업하도록 만든다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장 등을 거치면서 경제이론과 현장을 고루 경험했다는 평을 듣는 정 교수를 종로타워 22층 서울국제포럼 사무실에서 만나 한국경제 향후 성장의 비결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정 교수와의 일문일답.
-최근에 낸 책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잘 읽었다. 책의 키워드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성과주의'인 것 같다.
▲그렇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친 듯이 일했다. 우리나라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은 하나같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일 몰입'을 높게 평가했다. 일을 하나 맡으면 늦게 퇴근하든 말든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정신이 있었던 것이다.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이 이같은 '정신'에 있다고 생각하나.
▲우리나라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잘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이 뒤따를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정신을 갖게 된 뿌리는 결국 교육시스템이다. 지금 우리는 대학입시의 병폐를 많이 얘기하지만 긍정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공부에 열중하는 것이 습관화됐다. 쉽게 말해 중고등학교 6년 동안 공부에 매달렸던 습관과 가치관이 이후 평생을 가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리나라의 여자골퍼들은 하루 10시간씩 맹훈련을 통해 세계적인 선수로 거듭난다.
-하지만 학생들이 공부에 매달렸던 것은 자발적 의지라기보다는 부모들이 시켜서 하는 것이 대부분 아닌가.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는 왜 부모들이 자녀에게 공부를 강조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부모들은 실력을 키우는 것만이 자녀들의 장래를 보장해준다고 생각한다. 부모세대가 그래왔다. 사회계층이 없어지면서 열심히 하고 노력하면 신분이 상승할 수 있는 사회가 됐다. 유교적인 전통 하에 시작된 과거제는 오늘날 고시제도가 되면서 사회시스템도 뒷받침됐다. 이런 현상이 눈에 보이면서 부지런하게 일하고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만들어졌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더 열심히, 더 부지런히' 공부하길 강조한 것도 여기에 있다.
-백번 양보해서 과거의 성공경험인 이러한 교육시스템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도 과연 유효할까.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방법은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열심히 하는 것이 창의성을 키우는 데 반(反)하는 거냐고 한다면 그건 확실치 않다. 창의성이라고 하는 것은 기존에 있던 것을 재결합하는 것이 많다. 재결합은 곧 벽을 허물고 여러 조직이 통합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능력을 키우는 것이 장시간 공부하고 일하는 것과 반비례하는 관계는 아닌 것 같다. 우리가 가진 일과 공부에 대한 몰입을 살리면서도 얼마든지 창조경제나 창의성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박근혜정부가 내놓은 창조경제라는 것은 창업을 활성화하고 정보통신기술(ICT)과 기존산업을 융합하고, 서비스나 컨텐츠 개발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런데 세 가지 모두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엔 한계가 있다. 정부가 나선다고 될 일은 아니다. 창조경제가 결국 잘 되려면 비즈니스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경제민주화와 상충된다는 말인가.
▲그렇다. 일반적으로 규제가 많으면 돈 벌기가 어려워진다. 그런 점에서 두 가지 경제정책이 충돌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론적으로는 둘 다 갈 수 있을지 몰라도 기업에 대한 규제와 감시가 많아지면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정부나 정치권은 이런 점을 잘 살펴야 할 것이다.
-우리경제의 성장에 발목을 잡는 것이 또 있다면
▲두말할 것없이 대기업의 고임금구조다. 박근혜정부 창조경제의 핵심은 창업을 활성화하면서 중소ㆍ중견기업을 많이 육성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러나 대부분의 인재는 창업보다는 임금이 높고 안정적인 대기업을 택한다. 왜 그럴까. 대기업에 취업하는 게 편하니까 그렇다. 사회적으로 대우 받지, 높은 임금 받지,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훨씬 유인책이 많은 데 누가 애써서 창업하려고 하겠느냐.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인 대만과 비교해봤더니 대만의 급여수준은 한국의 1/3 정도였다. 월급쟁이보다 중소기업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대만은 중소기업이 활발한 거다.
-고임금구조는 강성노조와 얽혀있어 해결이 힘들 것 같다.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대기업의 강성노조가 급여를 끌어올린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이들을 따라 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를 뺀 다른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이 중소기업보다 낮다는 통계도 있지 않느냐. 물론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고비용구조에 당장 손을 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라는 인식은 필요하다. 이 부분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한국경제는 성장하기 힘들다.단기적으로는 근로자에게 좋을 수 있지만 생산성에 비해 과도한 급여는 기업의 경쟁력을 해친다.
-이런 부분이 미래의 성장동력을 좀 먹는 것 같다.
▲한 최고경영자(CEO)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 "우리 회사 평균 급여가 9000만원인데 이 이상의 생산성을 내고 일하는 사람은 20%도 안 되는 것 같다". 이런 부분이 많아지면 경제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경제는 효율적인 부분이 커지고 비효율적인 부분이 축소돼야 한다. 효율적인 것은 경쟁에 노출된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는 경쟁에 노출되지 않고 높은 급여와 안정을 보장받은 '신도 모르는' 직장이 너무 많다. 우리경제의 핵심적인 문제다.
-정치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
▲기업활동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는 말아야 한다. 경제민주화도 좋지만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것이 경제가 성장하는 길이다. (지금의 정치권은) 반대로 하고 있다.
정리=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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