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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딸들 예술 속에서 속마음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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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뼛쭈뼛한 대화展

'삶의 소통' 영상-회화로 담아낸 전시
작가와 기획자들, 작품 앞에서 눈물도
종로 아트선재센터서 8월 18일까지

이소영, 드물게 찾아온 시간, 비디오 작품 중 일부.

이소영, 드물게 찾아온 시간, 비디오 작품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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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안경 낀 한 전시 기획자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코끝이 찡해져 얼굴이 발그스레하다. 어떤 작가는 가장 사적인 부분을 공개한 듯 쑥스러워하면서도 가슴이 뭉클하다. 작가들과 기획자는 이런 경험이 생소한 듯 관람객에게 보여주려고 준비한 전시장에서마저 표정들이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다. 이들의 머릿속엔 작품이나 전시보단 온통 '부모의 존재감'에 집중돼 있는 듯하다. 반면 부모들의 표정엔 넉넉함과 여유, 자식에 대한 대견함이 넘친다. '예술가'로 살아가는 딸들이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는지, '예술'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지 아주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는 얼굴이다.
9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만난 '쭈뼛쭈뼛한 대화'전의 주인공들의 모습이었다. 젊은 여성 작가들과 전시기획자, 그리고 그들의 부모가 '예술적 소통'을 담아낸 보기 드문 전시다. 예술로써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이들이, 인생에서 가장 밀접하지만 그동안 소통의 대상에서 누락시켰던 부모와 함께 예술과 삶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갖게 됐다. '쭈뼛쭈뼛한 말걸기'로 자식들은 부모에게 작업을 제안했고, 자식은 부모의 인생과 관심사를 착안하고, 부모는 예술하는 자식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이번 전시는 30대 여성들인 작가 박형지, 구민자, 이소영, 기획자 이성휘가 각자의 부모들과 예술로써 관개 맺는 방식에 따라 구성한 네 가지 프로젝트다. 작가 박형지와 그의 어머니 유창희씨는 '너의 그림'이라는 주제로 회화 10점을 선보였다. 유씨는 취미삼아 그림을 그리는데 시골의 한옥집, 정미소, 폐가와 같이 유년시절을 상기할 수 있는 소재들을 좋아한다. 반면 박 작가는 도시의 밤, 쇼윈도 풍경처럼 인공조명을 받는 사물들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로가 그 소재들을 교환해 그림을 그려나갔다. 작업과정에서 두 모녀는 서로가 이해하는 회화, 전업작가와 취미미술작가의 경계에 대해 대화하는 경험을 갖게 됐다.
구민자, 창립총회, 영상작품 중 일부.

구민자, 창립총회, 영상작품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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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자 작가는 아버지 구재유씨와 어머니 양희중씨와 함께 '구&양 문화재단'이라는 테마의 전시를 소개했다. 예술가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재단과 지원자'로 치환한 것이다. 30대 작가들이 갖는 경제적 불안정, 자신과의 싸움은 그들의 부모에게는 때론 착잡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다가온다. 또한 예술가들에 대한 공공지원의 부족은 작가들이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작품에는 작가인 딸과 부모의 손가락이 단단히 결합돼 있는 모습, 무릎을 세워 함께 맞댄 장면 등 영상작품이 있다. '드물게 찾아온 시간'이라는 주제로, 작가 이소영 역시 아버지 이길춘, 어머니 한영숙씨와 함께 작업을 준비했다. 딸이 옛 시절 가족과 관계된 기억에 대한 질문지를 매일아침 식탁위에 올려놓으면, 이에 대한 답을 부모가 적어가는 대화방식을 취했다. 손글씨로 나눈 대화는 세 가족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의 영상과 함께 담겨져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고천 이정길, 퇴계 이황 - 도산잡영 병기(陶山雜詠 幷記), 한지에 먹, 70 x 200cm.

고천 이정길, 퇴계 이황 - 도산잡영 병기(陶山雜詠 幷記), 한지에 먹, 70 x 2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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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글씨 작품들을 모아 딸이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제목은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한국전쟁과 가난을 경험한 세대로 서점을 운영하며 살아온 아버지 이정길씨가 20년 넘는 시간동안 애착을 갖고 꾸준히 써왔던 글씨들이다. 그는 유교 고전을 탐독하고 글씨를 연마해 미술대전 서예부문 입선의 경력이 있는 아마추어 서예가다. 퇴계 이황의 한시를 해석하고 자신의 생활과 심경을 한시로 표현하기도 한다. 기획자 이성휘는 평소 아버지가 글씨 쓰는 모습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이번엔 아버지 고천(古天)이 홀로 만들어온 글자의 세계를 면밀히 들여다보게 됐다.

작가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30대 작가로 살아가는 가운데 어떤 전환점이 된 것 같다", "특이하고 값진 경험"이었다고 평가한다. 기획자 이성휘는 "시간을 공유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평소 부모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이번에 아버지와 전시를 준비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부모들은 "예술이 하루아침에 이뤄지기 쉽지 않고, 고된 작업이란 점을 조금은 알게 됐다", "예술 작업은 끝이 없는데, 사회적 지원에는 한계가 많다. 적더라도 정신적으로라도 뒷받침해주고 싶다"며 딸들을 응원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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