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비리' 임직원, 파면 못하는 까닭은
공기업 최고 징계 '해임'
연루 직원들 퇴직금 먹튀 논란
[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 1. A공공기관에 다니던 B팀장은 올 초 감사원 감사에서 공금 횡령 사실이 드러나자 서둘러 사표를 제출했다. 징계를 피하기 위해 먼저 사표를 던지는 전통적인 수법을 쓴 것이다. 하지만 감사원은 회사 측에 사표 수리를 하지 말 것을 요청했고 B팀장의 잔머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야무야 시간이 흘러 그는 최근 사직했다. 물론 퇴직금도 두둑이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 2. 원자력발전소 비리 사건을 일으킨 C공기업은 비리를 저질러 해임한 직원 수십 여명에게 총 수십 억원대 퇴직금을 지급해 사회적인 논란을 빚었다. 범죄자에게 영치금이라도 건네 준 형국이었다. 여론의 뭇매를 맞자 이 공기업은 인사 규정을 뜯어고쳤다. 비위 사실이 적발돼 직위해제 시 퇴직금을 최고 31%까지 삭감 가능토록 한 것이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다.
공기업에 '파면' 징계가 없어 생기는 현상들이다. 공무원 집단처럼 공기업에도 인사 규정에 파면의 징계를 신설하고 상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D공기업 관계자는 "불미스러운 일로 회사에서 내보내더라도 금전적인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법적 한계가 있다"고 털어놨다. 왜 그럴까.
공기업 직원들은 특정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파면이 아닌 해임 징계를 받아 퇴직금을 수령할 수 있다. 법이 그렇게 돼 있다. 공기업은 일반 사기업과 같이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근거해 회사가 퇴직금 지급제한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보호받는 조직이다. 회사에서 잘리더라도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받도록 하기위해 만든 조치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가 일부 불법을 저지른 직원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퇴직금을 수령할 수 있는 '구멍'이 된 것도 사실이다. 정부 관계자는 "공기업에 파면 징계가 없어 퇴직금을 챙겨주는 분위기가 만연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원전 비리 등 회사는 물론 국가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힌 경우는 별도의 인사 규정이 마련돼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할 사안이 있고 아닌 경우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공무원은 파면될 경우 퇴직금의 절반을 받지 못한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비리에 연루돼 중징계 대상에 오른 공기업 임직원에 대해 징계 절차 중 사표를 쓸 수 없도록 117개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에 통보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개정 지침을 보면 해임ㆍ정직 등 중징계 절차를 밟고 있는 임직원은 사표(의원면직)를 쓸 수 없도록 명시했다. 주의ㆍ경고ㆍ견책 등 경징계는 해당되지 않는다.
정부가 공기업 인사 규정에 관여하면서까지 개정에 나선 것은 비리에 연루된 임직원의 징계가 확정되기 전에 사표 처리하는 관행을 막기 위해서다. 현재는 감사나 검찰 수사 도중 임직원이 사표를 제출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직할 때 불이익을 거의 받지 않는다. 공기업 임직원이 제재를 피하기 위해 사표를 쓰는 관행이 많았던 이유다.
E공기업 고위 관계자는 "해임과 파면의 가장 큰 차이는 퇴직금 지급제한 등을 통한 금전적인 불이익을 주는 것인데 법적으로 직원의 퇴직금에 손을 댈 수 없도록 돼 있어 파면 징계는 있으나마나"라며 "치명적 손실을 입혔을 땐 개인에게 회사가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지만 일반 사기업이나 가능한 일"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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