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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W 리더십]나는 '사람'을 M&A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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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박혜린 옴니시스템 회장

-인수합병 때 인재 나가면 헛일한 셈…23세때 수입타이어 팔던 그녀의 '인생 융합'
-대학 첫미팅때 '잔다르크' 별명
-계열사 10개인 M&A여왕으로
-"女지원책 되레 毒, 똑같이 경쟁해야"

박혜린 옴니시스템 회장

박혜린 옴니시스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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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잔다르크'에서 '인수합병(M&A)의 여왕'으로….

대학 졸업 직전인 1992년 11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대학 전공과는 어울리지 않는 타이어 수입 판매상이었다. 첫 번째 인수합병(M&A)이었다. 이곳에서 직원 10명과 함께 5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며 현장에서 온몸으로 경영 기초를 닦았다. 20여년의 세월이 흘러 10여개의 회사를 거느린 어엿한 M&A 여왕으로 거듭났다. 아직도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호탕한 목소리로 현장을 누빈다. 박혜린(44) 옴니시스템 회장 얘기다. 대학 첫 미팅 때 "잔다르크 같다"던 남학생의 말처럼 '이렇게' 살 거라고 예측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오랜 세월이 걸릴 지라도 사업을 하게 될 운명처럼 말이다.
지난 24일 서울 성수동 옴니시스템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박혜린 회장은 평소와 달리 얌전한 치마 정장 차림이었다. 인터뷰용 옷차림으로 갈아입었지만 특유의 '여장부' 느낌이 묻어났다. 가녀린 몸으로 수십 년간 현장을 진두지휘해온 그녀만의 생존 비결과도 같았다.

"여기저기서 성공한 여성 CEO라고 불러 주는데 왜 앞에 꼭 '여성'을 붙이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자리에 가면 난 여성, 남성 통틀어 훌륭해서 여기 왔다고 생각한다며 큰 소리 빵빵 쳐요. 다른 여성 CEO분들을 위해서 말이죠."

◆23살 사업에 뛰어들다= 박혜린 회장이 사업의 길로 뛰어든 건 '운명'이었다. 어린 시절 정미소를 하던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돌며 쌀을 사고파는 현장을 봐왔다. 자연스레 쌀 한 가마니를 팔면 얼마가 남는지 셈이 빨랐다. '월급쟁이는 싫다'는 확고한 꿈도 있었다. 그렇게 대학 졸업 전인 스물 셋 나이에 수입 타이어 '굿이어'의 서울지역 총판권을 인수하며 가인상사를 세웠다. 부모님의 도움 없인 불가능했던 일이었지만 '그게 다'였다. 이후의 성과는 고스란히 박 회장의 노력이 일군 결과다. 그는 "어릴 적부터 남들이 너무 당연하게 (나를 보고) 장사를 하게 될 거라고 예상하더라. 직원들이 이것저것 열거하면 하나로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통찰력이 있는 걸 보면 사업이 천성 같기도 하다"며 슬쩍 웃었다.
10여개의 회사를 별 탈 없이 이끌어가니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박 회장은 현재 5개의 명함을 갖고 있다. 사업의 길로 접어들었던 가인상사를 시작으로 바이오스마트 (신용카드 제조사), 디지털지노믹스(바이오), 옴니시스템(전자계량기), 한생화장품의 명함이 하나씩 늘어났다. 이 밖에 코를로프(고급 보석 유통사), 박 회장 개인 부동산을 관리해주는 회사 등을 더하면 10여개의 회사를 거느린 엄연한 '그룹사'다. 박 회장은 이날 옴니시스템 회장 명함을 건넸다.

"회장이라는 호칭 많이 부담스럽죠. 그런데 '어린 여자가 해봤자 얼마나 하겠어'라는 사회 풍토가 여전한 터라 비즈니스상 직함이 중요할 때가 있더라고요. 전략적으로 대외적인 자리에는 정부 수주나 입찰이 많아 '이름값'의 영향을 받는 옴니시스템의 명함을 가져가죠."

아무리 리더십이 있어도 하루 24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내 골고루 돌보기란 불가능할 터. 박 회장은 선택과 집중 전략을 쓴다. 매년 1월1일이면 올해 주력해야 할 회사 3곳을 꼽는다고 한다. 그 해의 주력회사는 '아픈 손가락'인 셈. 올해는 옴니시스템, 디지털지노믹스, 한생화장품이 명단에 올랐다. 특히 디지털지노믹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박 회장은 "지난 10년 동안 돈을 하나도 못 벌어 눈물을 머금으면서 회사를 운영해왔다"며 "다행히 2년 전 사람에서 식품 대상으로 사업 구조를 바꿔 사전식중독검사법을 개발하는 등 성과가 하나 둘 나고 있다"고 말했다.

◆"내 전공은 융합"…M&A의 성공조건은?= 박 회장은 'M&A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M&A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은 까닭이다. 싼 값에 회사를 사다 어느 정도 키워놓고 비싼 값에 팔고 떠나면 그만이라는 비아냥거림이 한 예다. 때문에 그녀는 "M&A에 대한 재해석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박 회장은 M&A를 '융합'이라는 좀 더 넓은 개념으로 봤다. 박근혜 정부의 화두인 '창조경제'와도 맞닿아 있다. 박 회장은 "M&A를 사람, 사업부서, 연구개발(R&D) 등 전 분야에서 일상화된 개념으로 본다"면서 "사업부서에서 필요할 때마다 해당 기술을 가진 연구인력을 영입하는 것 또한 M&A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이렇게 하면 제품 개발에 드는 시간을 아껴 시장에 빨리 출격할 수 있으니 위험 부담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최근 식구로 맞이한 피부관리숍 프랜차이즈 '레드클럽'도 한생화장품과의 융합을 생각한 결과였다. 여기에 색조화장품 회사를 추가해 화장품 사업 플랫폼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전 경영자도 아니고 기술자도 아녜요. 재무제표도 잘 못 읽죠. 하지만 이것저것 붙여서 융합하는 걸 제일 잘 해요. 제 전공인 것 같아요."

박 회장의 M&A 성공비결은 간단했다. '사람'을 놓치지 않고 관계를 잘 푸는 것. M&A를 일종의 '결혼'으로 보고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했다. 새로운 조직은 아예 건드리지 않았다. 수익을 내지 못하고 오히려 '까먹고' 있어도 그랬다. 박 회장은 "R&D M&A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술력을 가진 사람 때문인데 사람이 나가면 안 된다"면서 "새 식구가 된 회사를 정확히 알려면 최소한 2~3년은 걸리는 만큼, 그동안 내가 잘 할 수 있는 영업으로 뒷받침 해주며 새로운 조직에 융화되려고 한다"고 말했다.

◆'여성'을 버려야 성공한다= 박 회장은 누가 뭐래도 젊은 나이에 성공한 CEO 반열에 올랐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숱한 시련도 있었다. 사업 초기 남성들이 툭툭 던지는 모욕적인 언사 때문에 사업을 그만둬야하나 고심했고, 결제대금을 떼어먹고 도망가는 카센터 사장들을 원망하며 울기도 했다. 그러나 곧 이겨냈다. 호탕한 목소리에서 짐작하듯 긍정적인 에너지로 고비 고비를 넘어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는데 그 말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실패가 와도 기쁜 마음으로 넘겨요. 하루에도 일희일비가 많지만 나쁜 일이 있을 때도 짧게 끝내요. 실패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문제니까요."

사업가에게 실패는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다. 그러나 이 산을 넘어 현재 박 회장 곁에 있는 여성 CEO는 드물다. 박 회장은 이런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여성이라는 성의 정체성을 깨지 않아서예요." 박 회장의 간단명료한 답이 돌아왔다. 여성이라는 성을 깨고 남성과 똑같은 위치에서 경쟁하며 자신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는 얘기다.

또 여성 지원책을 일종의 '독'으로 봤다. 지원을 받는 순간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지원책이 사라진 후의 일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여성 지원책을 받으면 당시에는 좋지만 장기적으로 지원책이 없으면 끝"이라며 "여성 기업체가 아니라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보고 경쟁해야 한다. 심지어 여성은 더 섬세하게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회사 여직원들에게도 '여성이라서' 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일러준다고 한다. 회사의 일원으로서 마음가짐을 바로 하라는 의미다. 이는 박 회장이 수십 년간 현장에서 몸소 깨달았던 생존의 법칙이기도 하다. "입사 초기에는 여직원들이 남직원들보다 훌륭한데 1~2년 지나면 달라져요. 여자라서 못하겠다고 하는 것들이 늘어나면서죠. 회사에 들어왔다고 끝이 아니라 직장생활 내내 여성의 틀을 계속해서 깨야 성공할 수 있어요."

박혜린 회장은…
▲1969년 경기 여주 출생 ▲1987년 잠실여고 졸업 ▲1991년 서울여대 도서관학과 졸업 ▲1992년 가인상사 설립 ▲2007년 바이오스마트 인수 ▲2008년 디지털지노믹스 인수 ▲2009년 옴니시스템 인수 ▲2009년 한생화장품 인수 ▲2012년 레드클럽 인수 ▲2012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 ▲2012년~ 한국벤처기업협회 부회장

※옴니시스템은 어떤 기업? 디지털 전력량계 국내점유율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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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린 회장은 지난 2008년 스마트 그리드 사업을 하는 옴니시스템을 인수했다. 건설경기가 침체되면서 수요가 줄었지만 향후 발전 가능성을 크게 봤다.

디지털 전력량계 제조업체인 옴니시스템은 시장의 85%를 차지하고 있는 국내 1위 업체다. 국내 최초로 원격 검침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후발업체와의 간격도 크게 벌였다. 또 지속적인 연구개발로 가스, 수도, 온수, 열량계 등 설비미터도 디지털 방식으로 개발한 계측 분야 선도 업체다. 특히 디지털 전력량계는 기간을 짧지만 도입기를 벗어나 성장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각국의 스마트 그리드 사업도 옴니시스템엔 호재다. 스마트 그리드란 에너지 효율을 높여 에너지 낭비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사업을 말한다. 전력사업과 통신, 정보통신(IT)이 결합해 고효율의 지능화된 전력망을 구축한다.

옴니시스템을 인수한 성과는 아직이다. 건설경기 침체와 대기업까지 계량기 시장에 진출하면서 시장 상황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 80억원, 영업손실 3억2600만원이다.




박혜정 기자 par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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