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블로그]거래소 이사장, 정치보다 법대로
한국거래소(KRX)가 신임 이사장 인선 문제로 시끄럽다. 당초 업계 출신의 최경수 현대증권 전사장과 황건호 전 금융투자협회장이 유력하게 거론되더니 최근 4선 의원 출신인 김영선 전의원 내정설이 강력하게 대두됐다. 최 전사장과 황 전회장에 대해 반대 성명서까지 낼 정도로 비판적이던 노조를 비롯한 거래소 직원들은 김 전의원에 대해선 우호적인 시선을 보냈다. 4선 출신의 힘있는 정치인이 공공기관 해제 등 해묵은 현안을 해결하는데 유리하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작용했다.
김 전의원으로 굳어지던 분위기는 언론보도로 다시 반전됐다. 거래소의 업무보고를 받는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장 출신이 전문성도 없이 이사장이 되는 것은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라는 날선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거래소가 내정된 사실이 없다고 반박 자료를 낸데 이어 청와대도 서둘러 내정설을 진화하고 나섰다.
장관이나 주요 기관장 임명때면 흔히 나오는 그림이다. 출사표를 던진 유력 인사들이 차례로 부각되다가 한 사람으로 좁혀지고, 갑자기 낙마하면 새로운 인물(군)이 부상하는 식이다. 공공기관이고, 한국 자본시장의 인프라인 거래소의 수장을 뽑는 일이니 이런 익숙한 그림이 자연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거래소는 엄연히 주식회사다. 증권회사와 선물회사들이 적게는 0.07%에서 많게는 5%를 보유하고 있다. 여느 주식회사처럼 이사장에 대한 최종 선출은 주주들이 한다. 이사장을 사실상 '낙점'하는 정부 지분은 단 1주도 없다. 이사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융에 관한 경험과 지식을 갖추고 거래소의 건전한 경영과 공정한 거래질서를 해할 우려가 없는 자 중에서 뽑아야 한다는 문구가 있지만 선임 몫은 어디까지나 주주총회다. 후보 추천도 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한다.
현재 세계 거래소들은 각기 다른 나라의 거래소끼리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우는 등 무한경쟁을 하고 있다. 좀 더 좋은 상장사들을 유치하기 위해 규모를 키우고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정권 차원의 나눠먹기 인사로는 이런 경쟁에서 살아나기 어렵다.
지금 한국 증권시장은 위기다. 거래소의 주주들인 증권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움을 호소한다. 수수료가 원가수준으로 떨어진지 오래인데 그나마 받쳐주던 거래대금도 요즘은 대폭 줄어 거래 가뭄이란 얘기마저 들릴 지경이다. 10일엔 지점 직원의 자살 소식까지 나왔다. 증권회사들은 이런 상황을 앞장서 타개해 나갈 인사가 거래소 이사장을 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주식회사의 목적은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것이다. 거래소 주주들은 증권회사들이다. 증권시장이 잘 돌아가야 증권회사들의 이익이 늘어난다. 거래소 이사장을 뽑을 기준은 이미 법적으로 훌륭하게 규정돼 있다. 정치가 아니라 법대로 하면 문제가 꼬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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