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산업단지<3> 군산 국가산업단지

1997년 4월 21일 군산국가산업단지 내 대우자동차 군산공장 준공식에 고건 당시 국무총리(왼쪽 세 번째),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왼쪽 두 번째)이 참석, 생산 1호차에 기념사인을 하고 있다.

1997년 4월 21일 군산국가산업단지 내 대우자동차 군산공장 준공식에 고건 당시 국무총리(왼쪽 세 번째),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왼쪽 두 번째)이 참석, 생산 1호차에 기념사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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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에두르고 휘몰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群山)이라는 항구요…(하략)"


'깨어진 꿈이 탁류와 함께 섞인 도시'. 군산이 낳은 작가 채만식은 1938년작 '탁류'에서 군산을 이렇게 묘사했다. 옥구군에 딸린 작은 포구였던 군산은 일제가 호남평야에서 거둬들인 쌀을 본국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항만을 건설하면서 항구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군산시내 곳곳에는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군산은 군산국가산업단지ㆍ군산2국가산업단지(군장산업단지) 등의 건설에 힘입어 자동차ㆍ조선산업의 메카로 도약하고 있다. 아픈 수탈역사의 현장이 이제는 우리나라의 무역과 수출을 주도하는 주요 거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1972년 군산 한국합판 전경. 원목을 잘라 항구로 운송하고 있다. [사진=군산근대역사박물관]

1972년 군산 한국합판 전경. 원목을 잘라 항구로 운송하고 있다. [사진=군산근대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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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곡 운송 항구도시에서 합판산업 메카로 = 1930년대 항구도시로 유명했던 군산은 전후 60년~70년대 다시 한 번 부흥기를 맞았다. 전국적으로 새마을 운동이 고조됐고, 집짓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군산의 합판 산업이 붐을 일으킨 것이다. 군산은 인천, 부산과 함께 합판산업 3대 중심지의 하나로 꼽히며 막대한 부를 일궜다. 일제 강점기 미곡 수출로 유명했던 군산 항구는 합판을 실어 나르는 배로 분주해졌다. 청구목재, 한국합판, 선경목재 등 대표적인 합판회사들이 모두 군산에 몰렸다.


이복웅 군산문화원장은 "도매상들이 선수금을 내고도 한 달 씩이나 기다려야 할 정도로 물량이 부족했다"며 "물건을 기다리는 도매상들이 체류하면서 군산시내 술집이나 여관이 가득 찼고 '합판 덕분에 먹고 산다'는 말이 나돌았다"고 회고했다. 당시 군산의 합판산업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유명했다.

그렇게 60~70년대를 주름잡았던 군산 합판산업은 시대가 변하면서 몰락해갔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수입해오는 값싼 합판에 경쟁력을 잃으면서 주요 업체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 청구목재 터는 헐려서 현재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으며, 한국합판 공장 터에는 이마트가 들어서 있다. 선경목재 본사도 사라지고 공터만 남아 옛 영화를 추억할 뿐이다.


"대우차 1호 나온 날…대우 유니폼만 입어도 외상 줬었지" 원본보기 아이콘
◇자동차 세계공장으로의 발돋움 = 합판 산업의 몰락으로 활력을 잃은 군산시에 다시 생기를 되찾아준 것은 산업단지가 건설되면서다. 지난 1978년 군산시 소룡동 일대에 군산 1공단 산업기지(현 군산지방단지)가 들어서면서 한국유리, 기아특수강, 동양제철화학 등 대기업이 입주하는 등 발전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방단지의 수용능력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군산2공단 산업기지(현 군산국가산업단지) 지정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군산상의가 1986년 정부에 산업기지 확장을 건의하면서 1987년 건설교통부가 지정을 최종 확정, 건립에 착수했다. 당초 군산과 장항을 잇는 대규모 광역산업기지를 조성할 예정이었지만 간척사업이 환경단체의 반대로 지연되면서 군산지역에만 686만평의 산업단지가 들어섰다.


초기 군산국가산업단지의 기틀을 잡은 것은 대우자동차(현 GM대우)의 역할이 컸다. 1997년 4월 21일 고건 국무총리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첫 생산된 자동차에 서명을 하는 것으로 군산의 대우차 시대는 개막했다. 대우차는 군산을 '글로벌 전진기지'로 삼아 누비라의 노치백 해치백 왜건 등 새로운 차종 양산에 들어갔다. 비록 첫 공장은 인천이었지만 김우중 회장은 현대의 울산처럼 군산시를 '대우시'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다. 100만평이 넘는 토지를 단번에 매입하고 현지 인력들을 대거 대우자동차 노동자로 뽑은 것도 그래서다.


대우차가 부도로 그 꿈을 접기까지 3년간 군산은 대우차의 실적에 울고 웃었다. 당시 대우차에서 근무했던 박상준씨는 "대우차 유니폼만 입고 가면 외상을 해줄 정도로 군산 시민들에게 사랑을 받았다"며 "월급날만 되면 시내가 왁자지껄했고 주변 술집이 모두 대우자동차 임직원과 가족들로 가득 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2000년 9월 대우자동차가 최종 부도를 맞으면서 군산 일대의 경제도 다시 침체기로 들어섰다. 박씨는 "부도 전부터 몇 개월씩 월급이 밀리면서 소비가 급격하게 꺾였고, 주변 식당들도 모두 접었다"며 "대우자동차 부도로 군산시가 안 돌아간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2007년 현대중공업 공장 준공기념식. 현대중공업 군산공장 설립을 계기로 군산은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2007년 현대중공업 공장 준공기념식. 현대중공업 군산공장 설립을 계기로 군산은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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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ㆍ자동차로 재기 노리지만…경기침체 '휘청' = 대우차 이후 한동안 침체기였던 군산은 2007년 세계 1위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54만평 부지에 1조2000억원을 투자, 세계 최대의 도크와 골리앗 크레인을 갖추고 2009년부터 18만~25만톤(t)급 대형선박을 건조하고 있다. 12만평 부지에 연간 600메가와트(MW)급 생산규모의 풍력발전기 공장도 건설해 군산국가산업단지를 조선과 신재생에너지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하는 중이다. 대우자동차는 부도 이후 GM에 인수됐지만 한국GM은 여전히 군산 자동차산업의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로 군산 전체 기업 종사자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주력 기업들이 휘청거리면서 군산 시민들은 모처럼 찾은 활력을 잃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조선소가 지난해 인력감축에 들어갔고 철강업체인 세아베스틸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9%, 영업이익은 49% 줄었다. GM이 한국GM 군산공장에서 크루즈 후속 모델을 생산하지 않기로 했으며 사무직을 상대로 한 명퇴를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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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기업 관계자들은 정부가 나서서 대기업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1차, 2차 협력업체들이 잘 되기 위해서는 대기업부터 불황 파고를 넘어야 한다는 것. 현지 1차 협력업체 근무자는 "군산이 경기가 좋다고 하는 편인데도, 중소기업들은 위기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며 "대기업이 끌어줘야 저희(1차 협력업체)도 같이 나가는 만큼 거래중인 대기업 영업이 활성화가 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특히 자동차업종에 대한 지원이 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문경진 한국산업단지공단 군산지사 팀장은 "2020년까지 상용차 부문에 1700여억원의 국비ㆍ지방비를 지원하기로 되어 있는데 상용차 분야 육성을 위해서는 이를 조기에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량적 측면에서도 전북지역을 배려해 지역 기업에 대한 R&D 투자를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경기악화로 인해 재무상황이 악화되는 기업들에 대한 정책자금 상환 연장과 금리인하가 필요하다는 요구에도 정부는 귀를 기울어야 할 것이다.


이지은 기자 leez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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