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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아침]"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최종수정 2020.02.12 15:35 기사입력 2013.05.0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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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현 온라인뉴스본부장

백재현 온라인뉴스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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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오늘은 영화 '에비타'로 잘알려진 1940년대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 대통령의 부인 에바 페론이 태어난 날입니다. 에비타는 에바 페론의 애칭이죠.

아르헨티나의 한 시골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가난 속에서 자란 그녀는 15세에 무작정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상경했다가 당시 군인이었던 후안 페론을 만납니다. 후안 페론은 자신에게 너무도 헌신적인데다 뛰어난 미모의 에바와 결혼을 하지요.
불과 25세에 남편을 대통령에 당선시킨 뒤 그녀는 히틀러를 모방한 '페론주의'를 내걸고 각종 사회개혁을 단행합니다. 남녀평등, 노동자 처우개선, 외국자본 추방과 기간 산업 국유화 등등.

덕분에 노동자와 여성, 빈민들은 그녀를 열광적으로 지지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초등학생들에게 매주 자신의 부부를 찬양하는 글짓기 숙제를 하도록 하는 등 우상화에 나서 비난을 삽니다. 게다가 과도한 중공업 정책과 정부의 부패, 그녀의 사치 등으로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급격히 악화되어 갔죠.

그러다 그녀는 백혈병과 자궁암이 겹쳐 불과 34세의 나이로 죽고맙니다. 이후 남편은 군부에 의해 쫓겨나 망명길에 오르고 그녀의 시신도 군부에 의해 멀리 이탈리아로 몰래 숨겨져 버립니다.
이후 남편 후안 페론은 노동자, 여성, 빈민의 열화와 같은 지지로 극적으로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지만 1년도 못 돼 그만 죽고 맙니다. 그 자리를 물려 받은 사람은 후안 페론이 망명지에서 결혼했던 이사벨 페론이었죠. 그녀는 에바의 시신을 대통령 관저로 옮기는 등 에바 페론의 인기를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2년도 못 돼 그녀 역시 쿠테타로 물러나고 맙니다.

에바 페론. 그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만 짧은 생을 살다 간 그녀의 삶은 참으로 드라마틱 합니다.
백재현 온라인뉴스본부장 itb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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