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한 살의 여자가 갔다//...... 집에서 치른 아버지의 장례식/나는 사흘 동안 보일러의 연탄 가는 일을 맡았었다/한 겨울/단 한 번 불을 꺼트리지 않았었다/한 생애 이 일 맡아 했어도 좋았을 것을......//장례 마친 그 날도 그냥 조용히 웃고/말 한 마디 없더니//나는 희미한 미소만 기억할 뿐 오래 헤어졌다 겨우 만나는 영안실 사진 속의 여자 K.
고운기의 '다시 여자 K'
■ 앞의 시 '여자 K'를 읽지 않았다면, 이 시는 너무 담담했을지도 모른다. 고운기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귀만 열어두고 있을 뿐이다. 낯선 장례식장에서 말이다. 식구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고인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근조근 늘어놓으며 애통해 한다. 통증이 심한 쪽 암을 앓았던 여인. 엄마 손을 잡고 잠들다가 쉰 한 살의 독신녀가 갔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갔던 날을 떠올린다. 그 겨울 장례식장에서 보일러 연탄불만 갈았던 기억. 저승가는 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그 일을, 이 여인의 죽음 앞에서 '한 생애 이 일 맡아 했어도 좋았을 것을'이라고 말한다. 오래 헤어졌다 겨우 영안실의 사진으로 만난, 그 을지로 여고생 K. 말들의 홍수 속에, 감정의 낭비 속에, 요즘도 이런 천연기념물같은 아름다운 사랑이 있는가. 이런 잊지못할 절창이 있는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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