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긴급조치 9호 위헌·무효”
국가배상·재심청구 등 실질적 권리구제 길 열려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대법원의 긴급조치 9호에 대한 위헌·무효 선언한 함께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 권리구제의 길이 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8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홍모씨의 부인이 낸 형사보상 청구 소송에 대해 “국가는 6066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한 것으로 위헌·무효”라며 “긴급조치가 사후 해제돼 면소판결을 받은 사람의 경우 당초부터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위반 혐의는 무죄판결을 받았어야 하기 때문에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홍씨는 긴급조치 9호를 비방하는 내용 등이 담긴 유인물을 만들어 뿌린 혐의(국가안전과공공질서의수호를위한대통령긴급조치위반)로 재판에 넘겨져 1·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대법원은 1979년 홍씨에 대해 구속집행정지결정한 뒤 이듬해 5월 긴급조치 해제를 이유로 면소판결했다.
홍씨는 1988년 4월 사망했고, 부인은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대법원에 형사보상을 청구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도 이날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배남효씨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에 대해 법원이 위헌·무효라고 선언한 것은 형사소송법상 재심사유 가운데 하나인 ‘무죄 등을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경우’에 해당하므로 다른 재심사유 증명 없이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배씨는 긴급조치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져 1979년 징역1년 및 자격정지 1년 확정판결을 받고 2009년에도 재심을 청구했으나 당시 재판부는 재심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긴급조치에 관한 대법원의 위헌·무효 판단이 형사소송법상 재심사유에 해당한다는 법리를 처음으로 선언한 결정”이라며 “과거 긴급조치위반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피해자·유족들은 다른 재심사유 증명 없이도 재심을 청구해 무죄판결 및 형사보상을 받을 수 있고, 면소판결 피해자들 역시 곧장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헌법재판소도 지난달 긴급조치 1·2·9호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부합하지 않고 국가형벌권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국민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침해하는 등 모든 면에서 헌법에 위배된다”며 위헌 결정한 바 있다. 긴급조치 1호의 경우 앞서 대법원도 2010년 위헌·무효 선언과 함께 해당 조항이 합헌이라는 전제 하에 선고된 기존 판례들을 모두 폐기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유신헌법에 대한 반대·비판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법원 영장 없이도 구속·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은 긴급조치 1~9호를 1974~1975년 발동했다. 처벌에 필요하면 비상군법회의를 설치하고 집회·시위를 금지함은 물론 치안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군대 동원까지 가능할 수 있게 한 조치다.
권력에 대판 비판의 목소리를 위헌적 수단으로 틀어막을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 대표적 독소조항인 유신헌법 53조는 1980년 10월 폐지됐다.
대법원에 따르면 긴급조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는 1140명에 달하며, 처벌규정이 된 각 1·4·7·9호 가운데 1호와 9호는 위헌·무효가 선언됐고, 4호 관련 사건은 대법원에서 현재 심리가 진행 중이다. 서울고법·서울중앙지법에도 총 100여건의 긴급조치 재심사건이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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