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녹색→창조경제, 지우고 새로쓰는 경제 나침반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새 정부는 출범할 때마다 새로운 경제성장 전략을 내놓는다. 국정 전반을 아우르는 중기 전략이다. 하지만 결국 단기 전략에 그치곤 했다. 구상을 구체화하다보면 임기 중반이 되고 실행에 옮길 기간이 얼마 남지 않게 된다는 이유도 있다. 더 큰 이유는 새 정부가 이전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지 않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창조경제 역시 이런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된다.
◆만들고 없애고…경제 비전 잔혹사= 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에선 지속가능발전이 화두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경제와 사회, 환경이 균형 있게 발전하는 선진국가'라는 국가지속가능발전 비전을 선언했다. 이미 전 정부에서 설치한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중심으로 이 비전을 실현하려 했다. 경제뿐 아니라 환경, 사회 전분야를 아우르는 통합 시스템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당시 고 노 전 대통령은 "경제성장과 환경보전, 사회통합을 삼각축으로 해서 건강한 성장을 지속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 측면에선 생명공학을 필두로 하는 바이오산업이 각광을 받았다.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는 한국 바이오산업의 출발은 대부분 이 때 이루어졌다.
이명박 정부에선 이 기조가 완전히 바뀌어 녹색성장이 지속가능발전을 대체했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를 주력 실행 조직으로 삼고,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환경부장관 산하 위원회로 격하시켰다. 하지만 세부적인 실행 방식으로 보다 넓은 상위 개념을 대체하려다보니 연속성보다는 어색한 단절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속가능발전이 경제ㆍ환경ㆍ사회를 아우르는 개념이었다면 녹색은 환경의 조화만을 전제로 한 성장 패러다임이었다.
◆창조경제 콘트롤타워는 어디? =녹색성장이 '뜨자' 산업계는 저탄소ㆍ친환경 분야에 투자를 늘이며 호응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녹색성장도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환경부,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의 부서 이름에서 '녹색'이란 단어가 사라지고 있고,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는 국무총리실 산하로 격하되는 운명을 되풀이했다.
대신 '창조경제'가 이 빈자리를 빠르게 메우고 있다. 분야 간 융합, 정보통신기술(ICT)에 기반을 둔 것이란 창조경제는 '원칙이 선 자본주의와 공정한 시장경제'로 설명되는 경제민주화와 함께 박근혜 정부 경제 패러다임의 큰 축이다.
27일 청와대에 따르면 창조경제의 핵심 실행조직은 산업통상자원부ㆍ중소기업청 등 경제부처와 미래창조과학부다. 일각에선 '미래창조경제위원회' 같은 대통령 직속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청와대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20개에 달하던 대통령 소속 위원회는 국민대통합위원회ㆍ청년위원회ㆍ지역발전위원회 등 단 3개외 추가로 만들지 않겠다는 게 새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다.
구체적 실행방법이 전 정부들과 사뭇 달라졌지만 현장에 미치는 영향은 5년 전이나 마찬가지다. 김대중 정부의 정보기술(IT) 산업, 노무현 정부의 바이오산업, 이명박 정부의 녹색ㆍ친환경산업에 이어 산업간 융합을 전제로 하는 ICT산업 등으로 '테마'만 달라지고 있을 뿐이다. 창조경제가 우리 경제의 새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으려면 구체적 전략을 세밀히 다듬어 산업현장에 전파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또 각 산업군이 정부를 신뢰하고 투자를 결정할 수 있도록 정책의 연속성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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