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방, 한때는 동심의 메카였던…
50대 만화키드 김현식씨 소장품 전시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100년이 훌쩍 넘은 한국 만화의 역사. 1909년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이도형 만평으로 시작된 한국의 만화는 2000년대 웹툰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의 중요한 영역 중 하나로 자리했다. 만화방에서 콧물과 침을 묻혀가며 한 장씩 넘겨 보던 예전의 만화책은 우리네 정서와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래서 디지털로 만화를 보는 지금에도, 과거 즐겨보던 '만화책'에 대한 향수를 가진 이들이 많다.
마침 한창 만화책 시장이 번창하던 1970년대, 그리고 해방 이후 초창기 만화사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끈다. '20세기 만화대작전-만화와 시대전'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 전시는 그때 그 당시의 실물자료를 중심으로 우리 만화사를 소개한다. 어린이들에게 별다른 유희나 취미 수단이 없었던 근대화 당시 만화는 자생적인 어린이 문화로서 지금의 40~60대들에게 어린 시절 추억으로 차지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만화책이 7대 사회악으로 여겨져 단속이나 폐기처분의 대상이 되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만화의 사료적 가치를 이야기하기보다는 만화로 표현된 그 시대의 통속성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뒀다. 이번 전시는 과거의 만화책이 담지한 사회상을 현재 우리들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전시기획자인 만화평론가 백정숙 씨는 "종이만화가 없어지고 있다는 아쉬움은 대중문화의 매체로서 비단 '만화'만의 문제는 아니다"면서 "한국의 정치사회적인 격변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이들이 감성을 어루만질 수 있었던 통로, 한편에서는 사회저변에 깔린 저항의식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만화책'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김현식 대일광업 전무(58)가 수집한 만화책들이다. 김 전무는 어릴 때부터 만화방 문화에 푹 빠져 살았고, 각박한 시대를 건너는 성장과정에서 마음 속 깊이 담았던 만화들을 헌책방에서 한권, 두권씩 모아왔다. 그래서 그가 소장한 만화책 실물자료만 총 5000여권에 이른다. 극히 일부만 전시에 소개되지만 '만화키드' 김 전무의 자료는 과거 한국사회를 다시금 바라보게 한다.
이 전시는 1970년대 만화책과 해방이후 만화로 테마가 나눠진다. 전시기간 또한 21일부터 다음달 17일까지, 내달 21일부터 4월 7일까지로 따로 잡혀 있다. 첫 번째 전시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꺼벙이'와 '로보트태권V', '독고탁'이 노닐었던 1970년대의 만화를 소개한다. 당시는 유신체제의 각종 사회문화적 변화들이 다양하게 나타났던 시기로서 만화를 둘러싼 외적 환경이 크게 바뀌고 만화의 내용에 대해서도 많은 압박이 가해졌다. 유신헌법 발포 전후로 사회정화라는 명분 속에 불량만화 단속이 매년 이뤄졌다. 하지만 만화가게는 어린이 청소년의 탈선장소라는 오명을 안으면서도 더욱 성행했다. 가난하고 힘겨웠던 시절을 버티는 당시의 삶의 모습은 명랑, 액션, 괴담, 순정만화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 남아 우리들 마음 속 고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중 명랑만화에는 가족의 이별과 친구의 모함, 그리고 가난한 사회 속에서 맑은 영혼으로 꿋꿋하게 가족과 사회를 일궈가는 이야기인 '비둘기 합창'이나 '무지개 행진곡' 같은 신파드라마가 있다. 또 한국전쟁 당시 재산과 가족을 빼앗긴 한 소년이 포염속에서 국군의 진격으로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를 담은 '호야의 증언'이나, 전쟁 이후 간첩을 때려잡는 이야기를 담은 '113수사본부 야간열차' 같은 반공만화도 볼 수 있다. 간첩에 대한 이야기에는 형사 스릴러물의 형식으로 그려진 작품들도 있었는데, '반공실록극화'라는 타이틀로 등장한 '김일성의 침실' 시리즈와 박수산의 '기생간첩 김소산'등은 사건의 팩트와 상관없이 '사실적인' 묘사를 위주로 하는 성인만화로, 불량만화 시비 때면 단골로 등장하는 작품들이었다. 이외에도 청춘보고서인 강철수의 '사랑의 낙서', 김형배 '기타스토리'등이 있었고, 전 세계를 강타한 이소룡 신드롬에 발맞춘 '이소룡의 호투'시리즈도 인기만화 중 하나였다.
두번째 전시인 초창기 만화사에서는 해방,한국전쟁, 혁명을 관통하는 과정에서 처음 등장했던 만화책과 만화신문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읽을거리가 그리 많지 않던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아이들의 손으로 만화책이 전파됐고, 이 만화들은 전후 복구의 환경에서 돌봄을 못 받아 알아서 커 가야 했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마음을 채워주었다. 분명 만화인 건 맞지만 만화책의 형태와 표현방식, 그림 스타일 그 모든 것이 지금과는 전혀 달라 마치 골동품을 보는 느낌을 준다.
백정숙 씨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해방공간에서 만화책은 한국어 보급에도 큰 역할을 했다"면서 "과거 만화책에 대한 아카이빙이 여전히 부족한 형편이지만 소장가들이 가지고 있는 실물자료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파악하 연구자들 간에 우리 만화사가 가진 정보들을 공유하는 네트워킹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트선재센터(02-733-8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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