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2013]"아가야, 엄마 또 퇴짜 맞았어"… 견고한 육아장벽
[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쟁쟁한 실력을 갖춘 후배들이 밀고 올라오는데다 경기가 나빠 사람 구하는 기업이 드물어요. 일자리가 귀한데다 업종 특성상 젊은 감각, 잦은 야근을 요구하다보니 좀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네요."
재취업을 준비하는 주부 손현주(35ㆍ가명)씨는 20대 중반에 서울의 유명 사립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에 취업했다. 촘촘한 성적 관리와 인턴 경험,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30대 1의 경쟁을 뚫었지만, 결혼 2년만에 어렵게 입사한 회사를 그만뒀다. 시댁과 친청이 모두 지방이어서 아이 맡길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면서 손씨는 재취업에 나섰지만 '일자리'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손씨처럼 스펙좋은 고학력 주부들은 우리 경제의 아까운 실탄이다. 진학과 취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이들이 결혼 뒤엔 하나, 둘씩 백기를 들고 사라진다.
2009년 전국보육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취업 의사가 있는 영유아모(母) 가운데 30%는 '일 하고 싶지만 자녀를 안심하고 맡길 곳이 없다'고 답했다. '적당한 일자리가 없다(7.1%)'는 응답 비율의 4배를 웃돈다.
독립적인 대답처럼 들리지만 출산한 여성의 경제활동을 막는 두 개의 사유는 사실상 인과관계로 얽혀있다. 주위에선 손씨처럼 아이 맡길 곳이 없어 직장을 그만둔 뒤 적당한 자리를 찾지 못해 재취업에 실패하는 고학력 여성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이를 낳으면 회사를 그만둬야하는 사회구조는 고급 여성 인력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한창 일할 나이의 여성 근로자들이 가족이나 공동체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 육아와 가사 사이에서 길을 잃고 좌초한다. 그 사이 노동 인구는 줄고, 충분히 끌어 올릴 수 있었던 노동생산성도 제자리를 맴돌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약속한 '고용률 70%' 목표는 여성 인력을 노동시장으로 이끌지 못하면 결코 이룰 수 없다.
일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데도 일하지 못하는 고학력 여성이 늘어나는 건 사회적 손실이다. 우리나라 24~54세 여성의 고용률은 30년 전인 1980년 45%에서 2010년 60% 언저리로 올라섰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과 비교하면 꼴찌 수준이다.
보다 많은 고민을 남기는 건, 2년에 1%포인트씩 여성 고용률이 오른 지난 30년 동안 출산율은 반으로 줄었다는 점이다. 1980년 1인당 2.8명이었던 출산율은 2010년 1.2명으로 감소했다.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택하면 아이를 포기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코너로 몰리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인경 연구위원은 "여성의 교육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경제활동 욕구는 커지는 데 보육 등 사회적 지원 제도가 뒷받침되지 못해 나타난 게 저출산이라는 부작용"이라면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자아실현에 매진하는 골드미스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성공한 여성들의 육아 분투기는 이런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농협 최초의 여성 임원이 된 우명자 NH농협은행 본부장은 '일과 양육'의 병행을 가장 힘들었던 일로 꼽았다. 그는 "새벽마다 아이를 둘러업고 친정집에 맡긴 다음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다 다시 집에 돌아와 아이를 돌보는 생활이 반복됐다"면서 "부모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을 하기에도 고달펐고, 시댁의 이해를 구하는 것도 참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이렇게 워킹맘이 선 땅은 너무 좁다. 어린 아이들 둔 여성들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려면, 워킹맘이 개인기에 의존해 각개전투하는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 더 이상의 고학력 여성 실종 사건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국가가 저비용으로 안전하게 아이를 키워준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KDI 김인경 연구위원은 그래서 워킹맘을 지원할 사회적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여러 대안 가운데 하나가 바로 명품 어린이집이다. 김 연구위원은 "동네마다 비용은 낮고, 보육 품질은 훌륭한 명품 어린이집을 만드는 게 저출산을 해결하고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일 해답"이라고 조언했다.
기업들이 앞다퉈 부설 어린이집을 만드는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기업 어린이집만으론 어린이집에 목마른 워킹맘들의 수요를 충당할 수 없다. '삼성 대학'이라 불리는 삼성그룹의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려면 앞 줄에 선 1800명 이상의 아이들을 따돌려야 한다. 보낼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김 연구위원은 이런 점을 지적하며 "어린이집마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지역별 설립 규제를 풀면 좋은 어린이집은 시장 경쟁 속에서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면서 "아이를 믿고 맡길 시설이 늘어나면 여성의 고용률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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