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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혜진 "'26년' 제작 과정 자체가 이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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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송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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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재범 기자]배우 한혜진이 영화 ‘26년’과 만난 것은 지난 7월 초였다. 기억하기도 싫을 정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올 여름 폭염 속에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다. 영화 자체의 의미와 ‘외압에 따른 제작 무산’ 등 이 영화를 주목하게 만든 여러 요소들은 알지도 못했다. 그냥 빠져들었단다. 아마도 데뷔 후 출연했던 작품 가운데 이런 느낌이 처음이었다고. 그리고 지난 달 29일 영화가 개봉할 때까지 배우 한혜진은 없었다. 그냥 사격 국가대표 심미진만 존재해 왔다. 폭설주의보가 내린 6일 점심 쯤이었다. 올해 첫 기록적인 한파까지 더했다. 폭염에서 한파로 넘어오는 날씨의 변덕 속에 한혜진은 아직 심미진을 놓아주지 못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고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영화 속 미진도 그랬다. 살이 많이 빠진 듯 볼 살이 쏙들어가 있었다. ‘26년’ 개봉 후 일부 네티즌들의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다. 조금은 피곤해 보였다. 우선 영화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반대로 혹평이 나오기도 했다. 배우로서 어떨까.
한혜진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나올 수 있는 지적이다”고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이어 “참여했던 배우로서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이유는 분명히 있다. 시나리오에 있던 장면이 135분의 러닝타임에 모두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 제작의 경우 모든 장면을 촬영 한 뒤 편집을 통해 필요한 부분과 필요없는 부분을 잘라낸다. 하지만 ‘26년’은 촬영했던 모든 장면을 살려내 지금의 완성본이 나왔다는 것.

그는 “나도 마찬가지고, 배우나 제작사 대표분도 그럴 것이다. 너무 힘들게 완성된 영화라 어느것 하나 덜어내지 못하신 것 같다. 때문에 오히려 조금 미흡해 보이는 점이 있을 것이다”고 미안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진 = 송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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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은 꼭 자신의 잘못을 얘기하듯 미안해했다. 그는 영화 제작 환경에 대한 열악함을 조금 더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26년’은 캐스팅부터 개봉까지 불과 4개월 만에 완성됐다. 일반 상업영화로선 불가능한 스케줄이었다.

그는 “제작사 대표께서 26년에 대한 트라우마까지 있으신 것 같았다. 최대한 빨리 만들어 빨리 개봉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보일 정도였다”면서 “영화 일을 하면서 상황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엎어짐’(제작무산)을 너무 많이 겪으셔서 그랬던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상황은 영화가 촬영되는 동안에도 계속됐다고. 광주민주화항쟁의 경우 대한민국 역사상 한국전쟁 이후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런 사건의 중심이던 광주 시내 촬영에서조차 불합리한 경우를 수없이 당했다고 전했다. 한혜진은 “우리가 광주에서 이 영화를 찍는 데 이렇게 안 될까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며 잠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촬영도 거의 전투 수준이었단다. 극중 미진이 ‘그 사람’이 탄 차를 향해 총을 쏘는 장면은 대전에서 촬영됐다. 그 한 장면을 찍기 위해 대한민국 모든 곳에 촬영 허가를 구했다. 결국 허가가 떨어진 곳이 대전 한 곳 뿐이었다. 한혜진은 “정말 장소 섭외가 산 넘어 산이었다.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그런 조건을 알기 때문에 배우들 누구하나 불평 불만을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어렵게 완성된 영화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26년’과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묻자 얼마 전 광주에서 열린 제작두레 시사회를 꼽았다. 영화가 끝난 뒤 극장 안에 들어섰는데 대체 뭐라고 인사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더란다.

한혜진은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허공만 바라보시는 분, 고개를 숙이신 분도 계시고. 그 분들에게 ‘재미있게 보셨어요’라고 말을 해야 하나. 진짜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면서 “‘부족하지만 남겨진 분들의 아픔을 연기해 보려 했다’고 인사말을 전했다”고 말했다. 당시 어떤 관객은 ‘고맙다’고 짧게 인사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잊혀지면 안되는 일이다’ 또 어떤 분은 아직도 ‘빨갱이’란 소리를 듣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사진 = 송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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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로서 정말 가슴 아픈 일이라고 했다. 아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정말 가슴 아픈 일이라고. 그 역시 이런 영화가 다시는 만들어져서는 안되는 세상이 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혜진은 “‘26년’을 찍은 뒤 한 가지 변한 게 있다.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나 자신이 바뀌더라”면서 “광주민주화항쟁을 소재로 한 수 많은 영화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난 그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냥 배우로서 성공에만 목표를 두고 달려왔다. 그런데 이젠 내 주변을 돌아보는 눈을 갖게 된 것 같다”고 전한다.

혹시 ‘그 사람’에 대한 느낌은 어떨까. 맹목적인 증오와 분노가 아닌 그 어떤 감정이 있을까. 잠시나마 실제 유족이 돼서 살아온 한혜진이다.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이 나왔다. 한혜진은 “왜 그랬나. 혹시 두렵지는 않을까”라며 “꼭 ‘26년’을 보고 언젠가는 그 분들에게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결국 소재와 ‘그 사람’에 대한 얘기, 그리고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의 개봉 등으로 ‘26년’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26년’이 원하던 또 그렇지 않던 세상의 눈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영화가 됐다.
사진 = 송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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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은 “나를 포함해 배우들이나 감독님 제작사 대표님 등 ‘26년’과 관계된 모든 분들이 그 점을 알고 있고, 그 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란 점도 다 예상했던 부분이다”면서도 “‘26년’을 보는 개개인에게 이 영화가 어떤 도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역사의 한 귀퉁이에서 억울한 희생을 당한 분들의 죽음이 그런 가치로 매겨지기엔 너무 현실이 슬퍼질 것 같다. 그렇게 수많은 죽음을 하나의 도구로 이용하는 일은 바람이지만 절대 없었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영화 ‘26년’의 배우 한혜진, 아니 국가대표 사격선수 심미진과의 인터뷰였다.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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