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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의 X-파일]류현진이 넘어야 할 세 가지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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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의 X-파일]류현진이 넘어야 할 세 가지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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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양키스 산하 트리플A 팀인 스크랜턴은 지난해 6월 12일 홈구장인 PNC 필드에서 시러큐스와 일전을 벌였다. 경기는 한 동양인 투수에게 조금 특별했다. 이날 구단 창단 이래 최다 선발등판 기록을 수립했다. 전광판을 통해 사실이 알려지자 관중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주인공은 일본인 투수 이가와 게이(오릭스 버팔로스)였다.

“지난 5년 동안 잃어버린 것은 없다. 모든 경험은 피와 살이 될 것이다.”
이가와는 결국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마감했다. 마이너리그 통산 성적은 36승 25패 평균자책점 3.83. 메이저리그는 2년(2007~8) 동안 2승 4패 평균자책점 6.66에 머물렀다. 5년 전을 떠올리면 매우 초라한 성적이다. 이가와는 2006년 11월 29일 양키스로부터 2600만194달러라는 포스팅 입찰액을 제시받았다. 그리고 그해 12월 27일 5년간 2000만 달러를 받는 조건에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었다.

다저스, 왜 류현진을 선택했나

지난 10일 국내 야구팬들은 신선한 충격에 휩싸였다. 류현진의 포스팅 입찰액이 2573만 달러로 밝혀졌다. 거액을 제시한 구단은 LA 다저스. 단독협상권자로 선정돼 류현진과 연봉 협상을 벌이게 됐다. 극단적 변수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는 첫 한국선수의 탄생은 확정적이다. 개척자로 거듭난 류현진. 다저스에서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류현진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다양하다. 25세의 창창한 나이, 왼손투수.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이 있다. 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해 성공한 사례가 전무하단 점이다. 시장가치는 사실상 제대로 측정되기 어려웠다. 그 사이 “합당한 대가의 이적료를 제시하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다”라고 맞선 한화 구단의 강경한 태도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을 효과적으로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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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스포츠의 칼럼리스트 존 폴 모로시는 13일 ‘큰손 다저스의 해외시장 공략지도(Big-bucks Dodgers map overseas plan)’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글에서 그는 투자가 마크 월터를 비롯한 구겐하임 파트너 그룹이 다저스의 전력상승을 위해 엄청난 자금력을 바탕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단 인수 이후 처음 시도한 전력보강이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블록버스터 트레이드이고 최근 구단이 해외 스카우트 강화에 힘을 쏟는단 점 등이 주된 근거로 소개됐다. 실제로 다저스는 지난 6월 29일 쿠바 출신 외야수 야시엘 푸익과 7년간 4200만 달러의 조건에 입단 계약을 맺었다. 그 다음 타깃은 류현진이었다. 스탠 카스텐 사장과 네드 콜레티 단장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해외시장 개척은 우리의 역량을 잘 보여 줄 수 있는 부분이다. 국제화는 다저스의 중요한 DNA 가운데 하나다.”

새로운 경로를 통한 선수 수급은 다저스에게 낯설지 않다. 이는 메이저리그의 트렌드로까지 발전했다. 다저스는 1947년 잭키 로빈슨을 영입하며 첫 흑인 선수를 선보였다. 1981년에는 중남미 출신인 페르난도 발렌주엘라(멕시코)를 통해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1988년에는 당시 야구 변방이던 도미니카공화국에서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스카우트했다. 1995년에는 노모 히데오가 토네이도를 일으켰고 1996년에는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첫 풀타임 시즌을 소화했다.

이와 관련해 모로시는 “뉴욕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LA를 연고로 하는 다저스는 빅 마켓에 어울리는 투자를 시도하고 있다. 투자의 초점은 세계 각지에서 양질의 선수를 데려오는 것에 맞춰져 있다”며 “1990년대 후반 양키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들은 왕조를 꿈꾸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시장은 29개 구단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자유계약선수(FA)나 트레이드 시장에 비해 덜 치열하다. 다저스가 눈을 돌린 사이 이상훈(60만 달러), 임창용(65만 달러) 등으로 이어졌던 프로야구 선수들의 ‘포스팅 잔혹사’는 겨우 마침표를 찍었다.

류현진의 선발보직과 FA 시장

류현진은 아직 메이저리거가 아니다. 하나의 산을 더 넘어야 한다. 다저스와의 입단조건 합의다.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는 이번에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기세다. 류현진의 다재다능함을 내세우며 언론을 자극한다. 카스텐 사장은 “류현진과의 계약은 윈터미팅(12월 3일~6일) 뒤에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보라스의 언론플레이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굳은 자세라 할 수 있다.

류현진의 계약기간은 포스팅 입찰액과 25세의 젊은 나이 등을 감안하면 4년 이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간 포스팅에서 1000만 달러 이상을 제시받았던 선수들은 모두 3년 이상의 계약을 제시받았다. 더구나 류현진은 누구보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간절하게 바란다.

스캇 보라스 에이전트[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스캇 보라스 에이전트[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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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지난겨울 다르빗슈 유의 입단협상 때 보라스는 모두 3년 계약을 고집했다. 협상 결과는 구단이 내세운 조건이 상당 부분 관철됐다. 자유계약선수는 그 해 스토브리그에서 대박계약을 이끌어내지 못 해도 메이저리거 자격으로 다음해 시장을 노크해 볼 수 있다. 포스팅 선수는 다르다. 계약기간이나 연봉책정에서 선수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

현지에서는 류현진의 계약조건 최저선을 4년간 연봉 1500만 달러 정도로 조심스레 전망한다. 이 같은 계산은 포스팅 금액과 연봉을 합산해 연평균으로 환산할 때 1000만 달러 정도가 나온다는 가정 아래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다저스의 최근 돈 씀씀이와 의욕적인 분위기를 감안하면 연봉은 더 오를 수도 있다. 어쨌든 올해 4억 3천만 원의 연봉을 받았던 류현진 입장에선 메이저리그 최저연봉인 48만 달러(한화 약 5억 2천만 원)를 받더라도 한국보다 높은 연봉을 보장받게 된다.

그렇다면 다저스에서 뛰게 될 류현진은 어떤 보직을 맡게 될까. 포스팅 금액 등을 고려하면 붙박이 선발투수. 하지만 다저스는 그리 녹록치 않다. 우선 클레이튼 커쇼, 조시 베켓, 채드 빌링슬리 등은 선발진 합류가 확정적이다. 올 시즌 선발투수로 좋은 활약을 보인 크리스 카푸아노(12승 12패 평균자책점 3.74)와 애런 하랑(10승 10패 평균자책점 3.61) 등도 만만치 않은 경쟁자. 물론 LA 타임즈를 비롯한 LA 지역 언론들은 류현진의 자리를 위해 두 선수를 모두 트레이드할 수 있다고 보도한다.

사실 가장 큰 변수는 FA 시장이다. 다저스는 큰손답게 스토브리그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다. 최우선으로 쫓는 선발투수는 잭 그레인키(LA 에인절스), 구로다 히로키(양키스), 아니발 산체스(디트로이트 타이거즈). 특히 최대어로 꼽히는 그레인키의 몸값은 6년간 1억 2천만 달러에서 1억 5천만 달러까지 거론된다. 엄청난 몸값에도 다저스는 그레인키를 영입할 유력한 구단으로 손꼽힌다. 언론의 쏟아지는 관심에 부담을 느끼는 그레인키 개인의 성향을 얼마나 돌려세울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대두되는 형국이다.

구로다 역시 다저스에게는 매력적인 카드다. 매년 1년 계약을 고집하는 그를 영입할 구단은 사실상 양키스와 다저스, 두 곳이다. 물론 계약기간은 2년이 될 수도 있다. 구로다는 얼마 남지 않은 현역생활의 마지막을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로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 다저스가 그레인키 영입에 성공할 경우 그 뒤를 이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그의 가족은 뉴욕이 아닌 LA에 거주하기도 한다. 더구나 양키스는 구로다에게 많은 연봉을 제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치세를 내지 않기 위해 내년 선수단 총 연봉을 1억 8900만 달러 밑으로 줄여야 한다. 이들이 내세울 수 있는 카드는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이 가져다주는 후광뿐이다.

구로다 히로키[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구로다 히로키[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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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스가 그레인키와 구로다를 싹쓸이할 경우 류현진의 입지는 크게 좁아질 수 있다. 카푸아노와 하랑이 모두 트레이드된다는 보장도 없다. 후반기로 예상되는 왼손투수 테드 릴리의 가세도 빼놓을 수 없는 걸림돌. 결국 최악의 경우 류현진은 ‘2573만 달러를 주고 데려온 중간계투’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달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더라도 가장 중요한 건 류현진의 마음가짐이다.

다저스는 류현진이 선발진에서 밀린다 하더라도 개막전 로스터에 포함시킬 가능성이 높다. 수천만 달러를 주고 사온 선수를 마이너리그에서 준비시키는 건 우스꽝스런 결정이기 때문이다. 중간계투로 경험을 쌓다 호시탐탐 선발진입을 노리는 건 굴욕적인 모습이 아니다. 더구나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 갓 데뷔하는 신인이다.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124승을 올린 박찬호도 16년 전 맡았던 보직은 중간계투였다. 류현진의 목표가 박찬호의 루키 시절(1996년 5승 5패 평균자책점 3.64)이라면 그것은 결코 초라한 목표설정이 아니다.

다저스가 FA 시장에서 선발투수 영입에 실패할 경우는 어떠할까. 류현진이 선발투수로 시즌을 시작할 가능성은 크게 높아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메이저리그 4~5선발 자리는 고만고만한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주인공이 가려진다. 그래서 매 시범경기는 중요한 고비나 다름없다. 하지만 경쟁에서 류현진은 예외적인 존재에 가깝다. 엄청난 돈이 투자된 까닭이다. 다저스는 시범경기 성적과 관계없이 류현진을 선발진에 투입시켜 자신들의 기대치를 확인할 것이다. 부상을 당하지 않는 이상 시즌 초반인 4월과 5월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오르는 기회를 제공받을 것이다.

메이저리거 류현진이 보완할 점

류현진은 지난 16일 캘리포니아 뉴포트비치에 위치한 보라스코퍼레이션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메이저리그 성공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압박감은 있겠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한국보다 덩치 큰 타자들을 상대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심치 않는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냥 대전구장에서 던진다고 생각하고 똑같이 던지면, 메이저리그나 한국 야구나 다를 게 없다. 야구는 다 똑같다”라고 덧붙였다.

류현진은 마운드에서 왼손, 오른손 타자 관계없이 바깥쪽 승부를 즐겼다. 오른손타자를 상대할 때 그는 바깥쪽 직구로 유리한 볼 카운트를 잡고 가운데로 몰리는 듯하다 바깥쪽 낮은 코스로 떨어지는 서클체인지업을 구사했다. 이는 타자들의 삼진과 범타를 유도하는 강력한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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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은 지난겨울 해외진출을 목표로 직구 구속 상승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올 시즌 직구 평균구속은 지난 시즌보다 2km가량 올라 143.8km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서클체인지업의 위력은 조금 떨어졌다. 류현진은 돌파구로 슬라이더와 커브의 구사 비율을 늘렸다. 그리고 8월 이후 서클체인지업까지 이전의 위력을 되찾자 삼진 210개를 잡아내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는 데뷔 시즌(2006) 세웠던 204개를 경신한 수치다.

화려한 기록에도 그림자는 있었다. 직구의 구속이 오른 반면 탄착군이 높아졌다. 국내무대에서 문제로 불거질 소지는 아니었다. 류현진의 올 시즌 삼진/볼넷 비율은 210/46으로 4.57:1이었다. 이는 프로야구에서 7년 동안 남긴 3.35보다 높은 기록이다. 직구 제구력이 나빠졌어도 그것이 구위를 떨어뜨리거나 볼넷을 남발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던 셈이다. 문제는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국내 타자들과 차원이 한 단계 다른 기량을 가지고 있단 점에서 발생한다. 류현진의 높은 직구 특히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공은 충분히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노모 히데오는 2008년 선수생활을 결산하는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에서 투구할 때 절대적으로 조심해야 할 사항으로 스트라이크존 근처로 들어오는 높은 공을 꼽았다.

“일본프로야구 시절에는 일부러 높은 공을 던져 실점을 막은 적이 많았다. 내가 가진 구위라면 높은 코스의 공이라도 타자들의 헛스윙이나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는 힘없는 뜬공을 유도하기에 용이하다고 판단했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달랐다. 스트라이크존 근처로 들어오는 공이 높으면 여지없이 배트를 휘둘러 장타로 연결됐다. 일본에선 장타를 허용해봤자 2루타였지만 메이저리그에선 홈런이었다.”

높은 공에 대한 악몽을 경험한 투수는 노모만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는 한국, 일본, 대만의 투수들 모두 비슷한 의견을 내놓는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데뷔시즌(16승 9패 221탈삼진 평균자책점 3.90)을 화려하게 장식한 다르빗슈 유는 시즌 결산 인터뷰에서 “내가 직구 제구가 좋지 못하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며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높은 직구가 날아들면 주저 없이 배트를 휘둘렀다”라고 말했다.

다르빗슈 유[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다르빗슈 유[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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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이 걱정해야 할 부분은 하나 더 있다. 바깥쪽 일변도의 볼 배합이다. 한국프로야구는 바깥쪽 코스의 스트라이크를 후하게 잡아준다. 메이저리그는 다르다. 스트라이크존이 상대적으로 좁고 바깥쪽 코스의 공에 인색하다. 오히려 관대한 쪽은 몸 쪽 코스이기도 하다.

7년 동안 바깥쪽 코스 위주로 볼 배합을 했던 습관을 하루아침에 고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1번부터 9번까지 모두 홈런을 때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체격도 크다. 이들을 상대로 당장 몸 쪽 승부를 벌이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바깥쪽 공은 제구가 되지 않으며 포수 뒤로 빠진다. 반면 몸 쪽 공은 몸에 맞는 공이 된다. 덩치 좋은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격한 반응을 보일 경우 류현진은 자칫 마운드에서 위축될 수도 있다.

포스팅의 가장 무서운 함정

지난 15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포스팅 영입이 이뤄진 건 20차례 이상. 이 가운데 2천만 달러 이상의 입찰액이 터진 건 네 번이다. 거액의 이적료는 모두 성공과 직결되지 않았다.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이가와 게이가 대표적인 예다. 실망스런 성적을 거듭할수록 팀 내 입지는 좁아졌다. 마땅한 돌파구마저 마련되지 않았다.

마쓰자카는 2009년 부진으로 보스턴 레드삭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당시 적잖은 내셔널리그 팀들은 보스턴에 트레이드를 타진했다. 특히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마쓰자카가 극성스런 지역 언론과 팬들의 압박이 심한 보스턴을, 넓게는 강팀들의 격정장인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를 벗어나면 충분히 살아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하비에르 바스케스(은퇴)나 A.J 버넷(피츠버그) 등은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를 탈출한 뒤 거짓말처럼 부활했다. 하지만 보스턴은 내셔널리그 구단들의 이적요청을 거부, 마쓰자카와의 계약기간(6년)을 끝까지 채웠다. 바스케스나 버넷과 같은 사례로 이어질 경우 포스팅 영입실패의 주된 원인이 선수의 기량미달이 아닌 극단적 스트레스를 안기는 환경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들은 좋은 선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바보구단’으로 불리고 싶지 않았다.

마쓰자카 다이스케(오른쪽)[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마쓰자카 다이스케(오른쪽)[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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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와의 소속팀이던 양키스 역시 만만치 않았다. 원래 이가와는 그들의 영입 대상이 아니었다. 라이벌 구단인 보스턴이 마쓰자카를 영입하자 당시 구단주였던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불같이 화를 내며 일본인 선수의 영입을 지시,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게 됐다. 충동구매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양키스는 2600만 달러를 투자했지만 일찌감치 기대치를 충족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가와는 2007년 12차례 선발 등판, 2승 3패 평균자책점 6.25의 초라한 데뷔시즌을 보냈다. 그런데 시즌 뒤 적극적으로 트레이드를 요청한 구단이 있었다. 샌디에이고였다. 남은 계약기간 4년의 잔여연봉 1600만 달러를 모두 부담하겠다며 꽤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샌디에이고가 주목한 건 직구(투심, 컷 패스트 볼 포함)의 위력이었다. 이가와의 당시 직구 피안타율은 1할9푼6리로 양키스 내에서 두 번째로 낮았다. 1위는 컷 패스트볼의 대가 마리아노 리베라였다. 샌디에이고의 제안에 양키스는 교묘한 꼼수를 부렸다. 이가와를 영입할 때 지불한 포스팅 비용의 절반 이상 부담을 요구했다. 다른 구단에서 잘 될 여지를 1%도 주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물론 여기에는 포스팅을 둘러싼 두 구단 간의 해묵은 갈등도 한몫을 했다. 1997년 양키스는 합류 의사를 밝힌 이라부 히데키를 데려오기 위해 샌디에이고와 지루한 공방전을 벌였다. 결국 양키스는 이라부를 영입하는 대가로 유망주 2명과 현금 300만 달러를 지불했다. 10년 뒤 양키스의 무리한 요구는 당시 쌓였던 감정의 골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가와의 이적을 요청한 구단은 두 팀이 더 있었다. 2008년 겨울 친정팀 한신 타이거즈와 2009년 겨울 소프트뱅크 호크스다. 잇단 제의에 브라이언 캐시먼 현 양키스 단장은 기자들 앞에서 “이가와의 영입은 완전한 실패작”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가와를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구단은 당신의 기량이 메이저리그에서 통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일본으로 돌아간다면 구단의 재정 부담은 가벼워질 수 있다. 당신을 영입한 건 우리의 실수이지, 당신의 실수는 아니다. 그러나 양키스에 머물고 싶다면 이적 제안을 거부할 수 있다. 우리 팀에 남을 경우 당신의 행선지는 브롱스(양키스타디움)가 아닌 마이너리그 팀일 것이다.”

이가와는 최악의 굴욕을 당하고서도 계약기간 5년을 끝까지 채웠다. 마쓰자카 역시 다른 구단으로의 이적을 요구하거나 일본행을 택하지 않고 계약기간 6년을 소화했다.

자본이 커질수록 인내심은 작아진다

다저스의 공격적 행보는 라이벌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승승장구와 무관하지 않다. 1958년 나란히 연고지를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적한 두 구단은 2009년까지만 해도 다저스의 우위였다. 다저스는 연고지 이전 이후 월드시리즈에서 여섯 차례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상황은 최근 급변했다. 연고지 이전 이후 우승이 없던 샌프란시스코가 2010년과 올해 두 차례나 월드시리즈를 재패했다. 다저스를 제치고 서부의 명문구단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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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저스의 공격적 행보가 호주 출신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구단주였던 폭스시절(1999~2003년)의 재림이 될지, 새로운 왕조의 시작이 될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있다. 류현진이 입단 2~3년 내에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천문학적인 이적료(2573만 달러)도 구단 내 안전장치로 작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다저스는 메이저리거로서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할 경우 양키스나 보스턴이 그랬던 것처럼 ‘용도 폐기’를 택할 수도 있다. 거액의 이적료를 통해 입단하는 포스팅의 무서운 함정이다.

롯데 자이언츠의 외국인투수 라이언 사도스키는 메이저리그 시절 불운한 선수였다. 매번 샌프란시스코의 5선발 후보로 언급됐지만 배리 본즈의 전성기에 맞춰 우승을 노린 샌프란시스코의 전략 앞에 좀처럼 풀타임 선발투수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사도스키는 한국프로야구 진출 첫 해인 2010년 자신이 많은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자본이 커질수록 인내심은 작아진다(Budget is larger, Patience is smaller).”

김성훈 해외야구 통신원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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