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개인·소비자 피해…'뒷북 손질' 올해만 16개 제·개정
#강원도 영월에서 배추를 재배하는 A씨(72)는 표준계약서에 의한 '밭떼기(포전매매)계약'으로 한 해 농사를 망칠 뻔 했다. 수집상과 트럭 10대분에 해당하는 배추를 두 차례에 걸쳐 출하하기로 계약을 했는데 수집상이 '배추가 시들었다'며 두 번째 출하분을 가져가지 않은 것이다. A씨가 수집상과 거래하면서 표준계약서만을 믿고 배추의 품질기준 관련 계약서를 구체적으로 만들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수집상은 배추가 시들었다는 주장을 하면서 표준계약서상 '매도자가 통상적인 관리행위를 하지 않음이 명백한 경우'를 이유로 들었다. 반박이 쉽지 않았던 A씨는 법원까지 간 끝에 합의했지만 당초 계약금 570만원보다 적은 금액을 받는 데 만족해야했다.
1987년에 처음 도입된 표준계약서는 특히 2000년 이후부터 많이 만들어지고 활용되고 있다. 15일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 16개 업종부문에서 표준계약서가 제·개정됐다. 전자금융거래, 은행여신거래, 대부거래, 유학절차대행, 어학연수, 백화점과 마트 등과의 거래 등 대부분 우리 실생활과 밀접한 분야들이다.그러나 문제는 표준계약서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완전한' 계약서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분쟁의 소지가 있는 조항은 주기적으로 개정되고 있지만 개정을 많이 거친 표준계약서는 그 만큼 분쟁을 없애는 데 제 역할을 못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대부거래표준약관의 경우 올해 4월 한 차례 개정되었지만 일부 조항은 상이한 해석을 하고 있다. 약관 가운데 대출금을 만기 전에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를 '채무자가 2개월간 이자를 지급하지 않았을 때'로 정해 놓은 조항에 대해 채권자 측에서는 사실상 2개월간 추심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이라며 채무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항이라고 반발한다. 반면에 이 규정을 어기고 추심하더라도 채권자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채무자에게 실익이 없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올해 개정된 건설업 표준하도급계약과 전자금융거래기본약관은 각각 네 차례, 세 차례 보완됐다.
결국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되 분쟁의 여지를 최대한 남겨두지 않도록 꼼꼼히 살피고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따로 계약을 맺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다. 분쟁은 대부분 계약서에 명시돼 있지 않은 부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측은 법적소송까지 가더라도 문제해결이 쉽지 않다. 이에 대해 곽민우 변호사는 "표준계약서에 나와 있지 않은 사항은 분생 시 피해를 입증해야 한다"며 "처음 계약 때 약관 등을 자세히 확인하거나 법률검토를 받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지선호 기자 like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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