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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리더學] 왕건의 '힐링캠프'에 장수들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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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리더십키워드 <12> 고려 태조의 통치술

궁예가 권력 휘두를 때
포용과 인내심 발휘
신숭겸·홍유·복지겸 등
수많은 가신 자발적 복종

일러스트= 이영우 20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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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스무살의 나이에 1인자 궁예에게 발탁돼 마흔두살에 왕이 되기까지 그는 2인자로서 지속적인 신뢰를 받고 1인자를 뛰어넘는 리더십을 보였다. 추진력과 책임감, 겸손과 유연성. 그의 리더십을 대변하는 수많은 단어 중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포용력과 인내심이다. 고려시대를 연 태조 왕건의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왕건을 혼란한 시기에 능력 있는 장수들을 만나 운 좋게 왕이 된 인물로 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왕건 외에도 수많은 리더들이 있었다. 카리스마를 발휘했지만 독재적 태도로 민심을 지배하려고만 했던 궁예와 견훤은 결국 나라를 잃고 적장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사람을 끌어안고 부하들에게 귀 기울인 왕건은 최후의 승자가 됐다. 왕건은 권위를 내세우는 수직적 리더십이 아닌, 수평적 리더십을 갖춘 리더라 할 수 있겠다.

조직원들의 전폭적인 신뢰는 리더가 솔선수범할 때 따라온다. 왕건의 옆에는 일찍이 신숭겸, 홍유, 배현경, 복지겸 등 친형제와 다름없는 가신들이 있었다.

왕건에 대한 이들의 신뢰는 죽음을 불사할 정도였다. 왕건은 공산전투에서 정예 기병 5000명을 거느리고 신라로 가는 길에 견훤의 기습공격을 받았다. 이때 그의 부하 신숭겸은 왕건과 옷을 바꿔입고 적진에 돌격해 대신 죽음을 당했다. 왕건은 이후 그의 가족들에게 벼슬을 내려주고 지묘사(智妙寺)라는 절을 지어 원혼을 달랬다.
리더는 자신의 의견과 다른 반대자들의 의견을 중용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구성원을 포용할 수 있고, 자기 그룹의 경영활동을 비평적으로 보는 안목이 생긴다. 태조 왕건은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표방하고 발해(渤海, 698~926)를 '친척의 나라'로 생각했는데, 거란의 습격으로 925년(태조8)에 멸망하자 이를 매우 안타까워했다. 이에 대다수가 고구려 유민이었던 발해 백성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발해국의 세자인 대광현(大光顯)이 귀순하자 종실의 호적에 올려 왕계(王繼)라는 성명을 하사했다. 백성들을 하나로 만든 것은 물론, 평양을 제 2의 수도로 삼아 북진정책에 박차를 가하는 명분을 확보 할 수 있었다.

고려 초기는 각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호족의 힘이 컸던 시기다. 왕건은 귀순하는 호족들에게 포상조치를 잊지 않았으며, 때때로는 혼인정책으로 그들이 변심하지 않게 후사를 튼튼히 하고자 했다. 그는 지방 호족세력들의 강력한 힘을 견제하면서도 기득권을 보장하려고 노력했다. 사회 구조상 가장 효과적인 세력 규합인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혼인 정책은 당시에는 효율적이었으나 이후 후대 왕위를 놓고 세력 다툼을 하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도 받는다.

역사서를 살펴보면 왕건은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일에 능했던 것으로 드러난다. 고려사에 따르면 태조 왕건은 모든 일의 성패를 능히 먼저 알아 상을 주고 벌을 줌이 그 시기를 잃지 않고, 사악한 사람과 올바른 사람이 그 길을 같이 하지 못하게 했으니 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징계하여 제왕의 체통을 얻었다. 더구나 사람을 알아서 그 재주를 잃지 않게 하고, 아랫사람을 통어해서 반드시 그 힘을 얻었으며 어진 이를 임용할 적엔 의심하지 않았고, 간사한 사람을 제거 할 때에는 주저하지 않았다고 적혀있다.

그의 인사정책에서 눈에 띄는 점은 각 관직의 고급관리부터 하급관리들을 형평성에 맞도록 직접 선발하고, 여론 수렴을 통해 사(司)성(省)낭(浪)사(史)에 까지도 정원을 모두 채워 결원이 생기지 않도록 한 것이다.

특히 개국공신들에 대한 포상도 잊지 않았는데, 1등 공신들이 행정경험이 없는 무인들임을 감안하여 행정부서의 관직을 맡기지 않고 책봉과 포상으로 대신했다. 공(功)에 대한 후한 보상을 해주면서도 적절히 인사배치의 격을 지켰던 조치로 평가된다.

왕건은 장기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 인내심을 가졌던 인물로도 꼽힌다. 이를 드러내는 대표적 일례는 후삼국 중 전쟁의 형세에서 가장 유리한 조건에 있으면서도 섣불리 신라를 병합하려 하지 않은 일이다. 그는 신라를 무력으로 침략해 영토를 확보할 경우 민심이 틀어질 것을 우려, 친선관계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신라에서 경애왕(景哀王 924~927)이 집권하던 시절, 지방세력들이 고려로 귀순하자 당시 왕건은 신라왕실의 존엄성과 위엄성을 높이며 돌려보낸다. 이는 이후 경순왕이 신라를 통틀어 고려에 바치는 결과로 이어졌다. 장기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며 무력통일이 갖고 오는 물자손실, 인력낭비 없이 평화롭게 목표를 이뤄낸 것이다.
(도움말: 현대경제연구원)



조슬기나 기자 s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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