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인에 비해 쓰는 속도가 느리다."
"아무도 스무 살이 이토록 무의미하다는 걸 내게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어떤 이야기가,,/어떤 인생이,/어떤 시작이/아름답게 시작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아름답게 시작하는 시' 중에서)
낯선 풍경은 70~80년대 지식인과 21세기 지식인에게로 옮아왔다. 그는 "70~80년대에는 지식인이 앞장서 폭로하지 않으면 진실이 묻히는 시대였다"며 "지금의 지신인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삶과 환경을 만나는 존재인데 리딩그룹이 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진 시인은 '어떤 인생이, 어떤 시작이' 아름다운 것인지 스스로 묻고 있다. 21세기 아름다움은 타인과 소통하면서 '삶의 깊이'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음 시에서 그런 자세는 확인된다.
한진중공업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했던 김진숙 노동자를 두고 쓴 시이다. 21세기 지식인은 사람들의 주머니 속에 담겨져 있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영혼'과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 시인은 학생 청년들에게도 주문한다. "자신의 주머니에 다양한 경험을 채우고 안 해 본 것을 넓혀 나가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그 여유로 '세상의 절반'을 느껴보라고.
"세상의 절반은 사랑/나머지는 슬픔/.../세상의 절반은 삶/나머지는 노래/.../세상의 절반은 노래/나머지는 안 들리는 노래."('세상의 절반' 중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두고는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인 때가 있다.'('있다'중에서)고 강조한다. 신자유주의에 떠밀려 획일화되고 있는 문화 속에서 '있을 뿐인 때가 있는' 순간을 기억하고 누릴 수 있는 청년들의 자세가 보고 싶단다. 순간의 다양성이 모여 진실에 다다를 수 있다면 삶의 깊이가 깊지 않겠느냐는 다짐.
그리고 "우리의 갈비뼈 하나를 뽑아/진실을 만드세요, 하느님/그녀와 손잡고 나가겠습니다."('거리로' 전문)
'최승자 시인의 후계자'로 평가받고 있는 진은영. 2003년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과 2008년 '우리는 매일매일', 올해 '훔쳐가는 노래' 세권의 시집을 내놓았다. 그의 시는 '한땀 한땀, 천천히 스며드는' 깊이를 강조하는 울림 속에 존재한다. 1970년 생. 이화여대 철학과 졸업.
정종오 기자 iko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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