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가 졸면 깨워달라"..황당하고도 불안한 승객들
경기도 시내·광역버스 하루 14시간 격일제 근무…뾰족한 대책 없어
[아시아경제 지선호 기자] "야, 대길아!(가명) 일어나. 차 시간됐다!"
경기지역 버스가 졸음에 취했다. 장기간 운행으로 운전기사들이 졸음과 싸우고 있다. 20일 서울 여의도 환승센터 한쪽 편에 출입문이 잠긴 채 서 있던 K여객 000번 버스 앞문을 누군가 '쿵쿵쿵' 주먹으로 내리쳤다. 뒤 따라온 같은 회사 소속 동료 운전기사였다. 앞 차가 출발할 시간인데도 꼼짝하지 않고 있었던 것. 앞차의 운전기사는 졸고 있었다. 동료의 고함에 정차해 있던 버스에서 내린 운전기사는 "5분 더 남았는데 왜 벌써 깨우냐"며 짜증을 냈다. 그들에게는 버스 정류장이 막간을 이용한 휴게소였다.
'10000(만)에 하나 깜빡! 졸면 깨워 주세요.'
서울 여의도와 경기 안산을 오가는 K여객 버스 안에는 이 같은 '경고문'이 붙어 있다. 운전기사가 졸음운전을 하면 승객이 기사를 깨워달라는 문구다. 졸음운전 때문에 사고 발생이 잦아지자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생각해 낸 방안이다. 회사에서는 유머감각 있는 '아이디어'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문구를 본 승객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 한다. 매일 안산과 서울을 오가며 출퇴근 하고 있다는 50대 남성은 "승객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나? 운전사가 조는지 보느라 편히 갈수가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졸음운전을 불러온 가장 근본적 이유는 격일제로 운영되는 근무형태다. 격일제로 한 명의 운전기사는 하루에 최소 14시간을 운행한다. 정해진 운행횟수를 맞추자면 대부분 점심시간, 운행 사이사이 쉬는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다.
격일제 근무를 1일 2교대 근무로 바꾸면 부담을 줄일 수 있다. 2교대는 두 명이 8시간씩 나눠 버스 한 대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휴일근무자가 따로 있어 장시간을 연속해 운행하지 않아도 된다. 버스운수협회근로시간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기사 100명당 사고건수가 ▲2교대제 7.6건 ▲격일제 13.5건으로 조사됐다.
경기도 버스운수업체들은 수익성을 이유로 격일제를 고수한다. 2교대를 하면 격일제보다 인원이 최소 1.5~2배까지 더 필요하다. 2교대로 운행시간이 줄어들면 운전기사 수당도 줄어들어 노조도 사측의 제안을 쉽게 뿌리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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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버스회사는 대부분 민영제로 운영된다. 따라서 서울 버스회사보다 수익에 더 민감하다. 지난 2004년부터 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하고 있는 서울시는 버스회사의 일부 노선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보전해 준다. K여객 관계자는 "우리는 항상 인력부족에 시달린다"며 "대부분 운전기사들이 급여가 많고 근무여건이 좋은 서울로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8월부터 시행된 '버스운전자격제'로 최근 인력 수급이 더 어려워졌다. 운전기사는 대형 1종 면허 이외에 이 시험에 추가로 합격해야 버스회사에 취업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경기도 대중교통과의 한 관계자는 "2교대를 권장하고 있지만 노사합의 사안인 만큼 강요할 수 없다"며 뾰족한 대책조차 마련하지 못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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