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피해사례
-보험사인턴.호프집.편의점 등 규모 작을수록 더 위험
-술자리 신체접촉은 예사...수치심 때문 하소연도 못해
"콘돔 사이즈 좀 불러주세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A대학교 1학년생 김모양(20)은 얼마 전 걸려온 전화 한통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자신을 물건 배달하는 사람으로 소개한 한 남성은 처음에는 콘돔 신제품이 잘 배달됐는지 확인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콘돔 사이즈랑 품목명을 일일이 불러달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팔리는 콘돔 사이즈를 아느냐"고 질문 수위를 높이던 남성은 급기야 "자위기구랑 여성용 콘돔을 줄테니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를 알려달라"며 느물거렸다. 참다못해 점장에게 보고했지만 "그냥 전화를 끊으라"는 말 뿐이었다.
16일 오후 서울 시내 커피숍에서 만난 여대생 박모(24)씨.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지만 얼굴에 드리운 그늘은 숨기지 못 했다. 그녀는 아직도 밤마다 악몽을 꾼다. 지난 2월 보험사에서 인턴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끔직했던 기억 때문이다. 박씨는 인턴 수료의 마지막 조건인 보험 계약 한건을 성사시키기 위해 모 기업 고문인 최모(60대ㆍ남)씨를 지인 소개로 만났다. 그런데 코엑스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점심식사 자리로 이동하던 중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아버지뻘 되는 최씨가 갑자기 박씨의 머리와 볼을 쓰다듬은 것. 목덜미까지 내려온 손은 등을 쓸고 내려가 엉덩이 뼈 바로 위에서 멈췄다.
박씨는 "계약 성사를 위해 다급했던 내 상황을 노린 것 같다"며 "그래놓고도 당당하게 명함을 건네며 연락하라고 말하더라"며 치를 떨었다. 이후 박씨는 그 보험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6개월만에 사직서를 냈다. 최모씨에 대한 기억으로 고객들을 온전히 응대할 수 없었다. 박씨는 "소름끼치는 손길에 대한 기억 때문에 첫 직장생활을 망쳐 버렸다"고 한탄했다.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성범죄 발생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성폭력상담소의 피해사례를 살펴보면 60% 넘는 피해가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났다.
지방대학 4학년생인 이모(23)씨는 인터뷰 내내 흐느꼈다. 그는 소규모 학습지 출판업체에서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다 봉변을 당했다. 사장 김모(42)씨는 회식자리에서 "술자리에는 여자가 옆에 앉아야 한다" "여자가 따라주는 술이 더 맛있다"는 식으로 성추행을 일삼았다. "같이 춤 좀 추자"고 막무가내로 이씨를 끌어내더니 이씨의 등과 허리부분을 감싸는 등 신체접촉도 서슴지 않았다. 이씨는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성적 수치심을 느끼거나 정신적 고통을 당해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지방에선 알바를 구할 곳도 많지 않기 때문에 쉽게 그만둘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성추행 피해 여대생들은 관대한 술자리 문화를 주요 원인중 하나로 꼽는다.
기업체 엔지니어 부서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곽모(20)씨는 상사의 술버릇 때문에 피해를 입은 경우다. 부장이 술에 취했다 하면 홍일점인 곽씨에게 자기 볼에 입을 맞춰달라고 요구했던 것. 그러나 동석한 남성 부원들 중 어느 누구도 이를 말리거나 제지하지 않았다. 곽씨는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치욕감에 몸서리가 처졌지만 그만둔다는 생각은 '감히' 못 했다. 그는 "유교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한국사회에서 성추행 문제는 종종 피해자의 행실 탓으로 볼 때가 많다"고 항변했다.
김민영 기자 argus@
김보경 기자 bkly477@
김재연 기자 ukebida@
김혜민 기자 hmeeng@
노미란 기자 asiaroh@
이정민 기자 ljm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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