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美자동차 산업 지형을 바꾼 10대 사건과 대통령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미국 제조업에서 자동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자동차가 미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보니 미 대통령들은 자동차 산업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엄청난 돈으로 크라이슬러와 제너럴 모터스(GM)를 구제금융했다.

미국에서 발간되는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 온라인판은 미 자동차 산업에 영향을 미친 굵직굵직한 조치와 당시 대통령에 대해 최근 소개했다.
◆조지 부시·버락 오바마 크라이슬러·GM 구제금융

2008년 시작된 금융위기는 43대 부시 대통령과 44대 오바마 대통령 시대를 관통한다. 부시 대통령은 2008년 크라이슬러를,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GM을 구제금융했다.

올해 미 경제가 서서히 살아나면서 크라이슬러와 GM 모두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크라이슬러 주인은 2007년 독일의 다임러에서 미 사모펀드 서버러스 캐피털로 바뀌었다 2009년 이탈리아 자동차 메이커 피아트로 다시 바뀌었다. 크라이슬러는 최근 판매가 크게 늘어 유럽 부채위기로 고전 중인 모기업 피아트를 오히려 먹여살리고 있다.
GM도 최근 10개 분기 연속 이익을 내고 있다. 지난해 세계 1위 자동차 판매라는 옛 명성도 회복했다. 하지만 최대 주주는 지분 33%를 보유한 미 정부다. GM이 'General Motors'의 약자가 아니라 'Government Motors'의 약자라는 비아냥을 듣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미 카터 크라이슬러 구제금융

크라이슬러는 30여년 전 39대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에도 구제금융을 받은 바 있다. 카터 대통령은 1979년 자금난에 허덕이던 크라이슬러에서 준비 중인 'K카 시리즈'가 차질없이 생산될 수 있도록 15억달러를 지급 보증했다. 미 경기가 둔화하고 석유파동으로 물가가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 시절이었다. 크라이슬러는 차입 자금을 1983년 전액 상환했다. 정부가 챙긴 순익은 350달러였다.

◆제럴드 포드 에너지 보존법

1975년 에너지 부족으로 휘발유 값이 계속 오르자 38대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에너지 정책 및 보존법'에 서명했다. 미 정부가 사상 처음 에너지 규제에 나선 것이다. 당시 자동차 업계는 1978년부터 승용차 연비를 갤런(약 3.78ℓ)당 18마일(약 29㎞)로 맞추라는 당국의 기준이 너무 혹독해 달성할 수 없다며 투덜거렸다.

◆리처드 닉슨 간선도로 에너지 보존법

1974년 37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긴급 간선도로 에너지 보존 법안(Emergency Highway Energy Conservation Act)'에 서명했다. 1차 석유파동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산유량을 줄여 휘발유 값이 급등한 데 따른 조치다. 연료 소비를 줄이고 간선도로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줄이기 위해 미 전역 간선도로의 최고 속도는 시속 55마일(약 88㎞)로 제한한다는 게 법안의 뼈대였다. 이 법은 1995년 철폐됐다. 제한 속도는 주(州)마다 정할 수 있도록 변경됐다.

◆리처드 닉슨 환경보호청 설립

1970년 4월 22일은 제1회 '지구의 날'이었다. 그로부터 7개월 뒤 닉슨 대통령은 환경보호청(EPA)을 설립했다. EPA는 좀더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 조성 차원에서 연구, 기준 마련, 정책 시행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EPA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가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량은 기준이 처음 마련됐을 당시보다 75~90%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린든 존슨 간선도로·자동차 안전법

미국의 대표적인 소비자운동가이자 대통령 선거에도 여러 차례 출마한 랠프 네이더는 36대 린든 존슨 대통령 시절인 1965년 '어떤 속도에도 안전하지 않다(Unsafe at Any Speed)'는 제하의 저서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네이더는 책에서 안전에 신경 쓰지 않는 자동차 메이커들을 고발해 자동차 산업의 안전성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당시의 이러한 분위기가 이듬해 '간선도로 안전법과 전미 교통·자동차 안전 법(Highway Safety Act and National Traffic / Motor Vehicle Safety Act)'이 마련되는 계기가 됐다. 이 법으로 자동차에 처음으로 안전벨트, 안전유리, 충격 흡수 운전대(impact-absorbing steering wheels) 설치가 의무화됐다.

◆린든 존슨 수송부 설립

미 전역 수송 정책과 시스템을 조정할 수송부(Department of Transportation)가 설립된 것도 1966년 10월15일이다. 수송부는 4년 후인 1970년 설립된 EPA와 에너지와 온실가스 규제 정책에 대한 업무를 최종 담당하고 있다.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승용차 평균 연비를 현재의 두 배 수준인 갤런당 54.4마일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간선 도로 시스템

34대 드와이트 하이젠하워 대통령은 1956년 '간선 도로 시스템(Interstate Highway System)' 법에 서명했다. 이 법을 통해 총 4만1000마일(약 6만5893km) 길이의 각 주를 상호 연결하는 도로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셰보레 안에서 미국을 보게 만들겠다던 이 작업은 당시 피라미드 이후 최대 공공 역사로 평가받았다. 이 법으로 도로 체계가 정비되면서 시카고와 로스앤젤레스(LA)를 연결하는 유명한 '루트 66(Route 66)' 이용이 줄면서 애꿎은 희생양이 됐다.

◆우드로우 윌슨 연장도로지원법

28대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은 1916년 7월11일 '연방도로지원법(Federal Aid Road Act)'에 서명했다. 이 법안 통과를 계기로 연방정부 차원에서 도로 건설 자금 지원이 처음으로 이뤄졌다. 당시 정부가 지원한 금액은 약 7500만달러였다.

◆조지 워싱턴·토마스 제퍼슨 국도 건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1784년 고안하고 3대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제퍼슨이 1806년 승인하면서 '국도(Natiional Road)' 건설이 시작됐다. 포드가 자동차 대량 생산 시대를 열기 100년도 훨씬 이전에 미국 정부에 의한 사상 최대 규모의 도로 건설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이에 따라 1811년 1834년 사이에 포토맥 강과 오하이오 강을 따라 약 620마일 길이의 도로가 만들어졌다. 이 도로가 메릴랜드주 북서부의 컴벌랜드를 기점으로 했기 때문에 최초의 국도는 '컴벌랜드 도로(Cumberland Road)'로 불려졌다.



박병희 기자 nut@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해외이슈

  •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PICK

  •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