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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삼성-애플 소송전쟁, 최후의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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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주 한양사이버대 시니어비즈니스학 교수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시니어비즈니스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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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소송천국인 나라다. 인구대비 변호사 수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많고 소송만능주의가 일반사람들의 일상적 사고 속에 깊게 뿌리내려 친한 사이에도 서로 의견이 다르면 "맘에 안 들어? 그럼 고소해"라는 농담이 흔히 오간다.

기업 소송과 관련해 미국법이 우리나라 법과 다른 점은 기업의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에 더해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까지 해주라고 판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1995년 미국의 한 기업은 직원이 종이봉투에 전화기를 넣어가지고 나가는 것을 적발하고 회사기물 반출 및 도난 혐의로 종업원을 해고했다. 그런데 조사결과 이 직원은 개인전화기를 샀다가 반품하기 위해 회사로 가져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법원은 이 직원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명예훼손에 의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보상하라면서 회사에 우리 돈으로 약 112억원을 물어내라고 판결했다. 이른바 '불법행위법(tort law)'에 따른 배상판결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에는 "돼지(기업)가 법정에 들어가면 소시지가 돼 나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미국 법 제도의 또 한 가지 독특한 점은 배심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배심원들은 '보통시민'이다. 특별하게 법적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고도의 지적인 교육수준을 갖춘 사람이나 전문가들도 아니다. 범죄경력이 없고 해당 재판에 편견이 없는(없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배심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자신이 속한 집단의 보편적 가치나 주변의 정서에 동화되는 경향이 발생한다. 1995년 앨라배마 주법정은 미국의 한 자동차 회사가 흑인 자동차 딜러에게 "흑인이 자동차 딜러를 하게 되면 백인보다 도산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천문학적인 피해액 및 정신적 피해 보상을 해주라고 판결했다. 앨라배마 주 인구분포의 특성상 이 법정의 배심원들은 당연히 흑인이 많았다.

최근 삼성과 애플 간의 특허소송 사건에서도 미국 배심원들은 압도적으로 애플의 손을 들어주었다. '상식에 기초한 판단'이라고는 하지만 만약 동일한 사건을 한국법정에서 다루었다고 하면 한국의 배심원단 역시 같은 상식으로 동일한 판결을 내렸을지는 매우 의문이다. 배심원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보편적 가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몹시 부당해 보이더라도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것'이 글로벌 시대의 차가운 현실이다. 특히 미국은 물리적인 수출시장은 비교적 자유롭게 열어두는 대신 '법'이라는 높은 진입장벽을 쌓아놓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미국시장에 진출했던 일본 기업들도 미국시장에서 혹독한 '법정 신고식'을 여러 차례 치렀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수출이 전체 경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경제구조라면 해당 국가만의 독특한 진입장벽을 우회하고 대비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의 기업 소송은 단순한 법률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고도의 경제논리를 제공해줄 수 있는 경제학자, 문화전문가, 심리전문가, 특허전문가 등이 총동원되는 일종의 '사회적 전쟁'이다.
이번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에서 삼성전자 측이 크게 패소했지만 변호인단이 남긴 한마디는 의미심장하다. "소송에 이겨서 승리한 기업은 없다"는 것이다. 1980년대 일본의 전자회사들이 좋은 품질의 전자제품들을 저가에 미국에 수출하자 미국 전자업체들은 일제히 "약탈가격"이라면서 무더기 법정소송을 벌였다. 하지만 그 미국 전자업체들은 지금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기업의 진정한 경쟁력은 소송만능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혁신 뿐이다. 삼성ㆍ애플 특허전쟁의 진정한 승자가 누가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일이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시니어비즈니스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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