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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삼성-애플 승자 없는 못난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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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정일 기자]말끔하게 빗어넘긴 머리에 고급 양복과 넥타이, 여기에 안경까지. 식상하지만 영화 속 변호사의 모습은 한결같다. 엘리트 집단의 상징이랄까. 어디 외모 뿐인가. 언변은 논리적이고, 때론 감동적이다. 게다가 '정의와 진실'이라는 확신에 차 있다.

드라마틱한 반전은 그런 그들의 속물성이다. 할리우드 영화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는 괴짜 변호사인 미키 할러(매튜 맥커너히ㆍ2011년작)가 주인공이다. 제목처럼 링컨차 뒷좌석을 사무실로 이용하는 별종이다. 그의 속물성을 드러내는 명장면 하나. 갱단 두목에게서 수임료를 받자 봉투채 흔들어보고는 주머니에 넣는다. 갱단 두목이 "안 세어 봐?" 묻자 "벌써 셌어"라며 심드렁하게 답한다.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가 가벼운 오락영화라면 데블스 애드버킷(1997년작)은 선악을 다루는 보다 무거운 스릴러다. 주인공 캐빈 로맥스(키아누 리브스)는 승률 64연승의 승부사다. 이내 대형 로펌에 스카웃되면서 신분 상승에 취하지만, 연승이라는 욕망은 유죄임을 알면서도 무죄임을 주장해야 하는 자기파멸로 이끈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다. 두 영화 모두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진실은 부활하고 정의는 승리한다. 관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법의 엄중함과 불편부당을 공감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삼성전자와 애플간 특허 소송전이 영화보다 드라마틱하게 펼쳐지고 있다. 애플은 삼성이 디자인을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삼성은 애플이 통신기술을 훔쳤다고 맞선다. 전쟁터만 전세계 30여곳, 사실상 전면전이다. 세계가 주목했던 24일(현지시간) 미국 배심원 평결은 애플의 완승으로 끝났다. 1조2000억원의 배상액을 평결받은 삼성전자는 충격에 빠졌다. 애플은 의기양양하다.
앞서 유럽과 한국 법원은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지역마다, 국가마다 법원의 판단이 다른 것은 애초부터 이 싸움이 '정의'를 가리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승리 자체가 목적인 게다. 변호사들의 변론도 아전인수일 수밖에 없다. 진실보다는 호소가, 사실보다는 주장이 난무하는 또 한편의 영화다. 링컨차를 탄 미키 할러나 60연승의 캐빈 로맥스가 연상되는 것도 그래서다.

삼성전자와 애플 변호사들은 이미 돈방석에 앉았다. 수임료가 1억 달러 이상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배상액 10억5000만 달러의 10%에 가깝다. 이번 소송의 승자가 삼성전자도, 애플도 아닌 변호사라는 비아냥이 들리는 이유다.

그렇다면 패자는? 혁신이고, 기술이고, 시장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애플과 삼성의 소송은 미국의 혁신 역사에서 슬픈 날"이라고 꼬집었다. 저명한 수전 크로포드 하버드 로스쿨 교수도 "회사들은 법정보다 시장에서 경쟁을 벌여야 한다"며 특허권의 남용을 질타했다.

기업들이 특허 싸움에 매달리면 기술과 혁신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연구실이나 공장에서 응집해야 할 에너지가 법정에서 낭비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격 상승도 우려된다. 특허 비용은 고스란히 제품 가격에 반영될 것이 뻔하다. 이것이 '세기의 소송'이라는 삼성-애플 특허전의 불편한 진실이다. 수임료를 챙긴 변호사를 빼고는 모두가 패자인 모순. 결국은 법정을 빠져나와야 한다. 기업간 경쟁은 변호사들의 입씨름이 아닌 기술 경쟁으로 이뤄지는 것이 옳다. 법원이 아니라 시장에서 혁신과 도전으로 명예롭게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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