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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쓴 돈들, '신상털이' 압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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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정보요구 공세에 비밀주의 철폐
한국과 2010년 조세조약..올해 10명 1003억 자진 신고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은행 고객의 신분과 계좌 정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비밀을 지킨다는 스위스의 '금융 비밀주의'. 그래서 스위스는 대표적인 조세피난처(tax heaven)이자, 세계 최대의 '검은 돈' 보관소로 꼽힌다. 스위스는 지난 1934년 은행이 고객 정보를 공개할 경우 벌금을 물린다는 내용의 금융비밀주의를 아예 입법화하기도 했다. 이후 스위스는 세계 최고의 철통비밀금고로서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했고, 전 세계의 거부들이 스위스 은행의 문을 두드렸다.
이에 힘입어 2008년 기준 전 세계의 금융기관에서 관리ㆍ운용하는 비거주자 소유의 역외 계좌 자산 약 7조2000억달러 중 27%인 3조4000억 달러를 스위스 은행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물론 전 세계에서 스위스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은 스위스 은행의 비밀 유지 조항 때문이다.

그러나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던 스위스의 금융비밀주의 기저(基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 국이 역외탈세 차단을 위한 공세적 입장을 취하면서 조세피난처 국가 국적의 금융사들에 대해 예금자 정보공개를 요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선봉에 나섰다. 지난 2009년 미국 국세청(IRS)은 스위스 최대 은행 UBS가 미국 재산가들의 탈세를 도왔다는 정황을 잡고, 고강도 세무조사를 진행 UBS에 무려 7억8000만달러의 벌금 폭탄을 투하했다. 미국은 한 술 더 떠 미국내 UBS지점들을 모두 폐쇄하고 자산을 압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UBS를 압박했다. UBS는 이 압박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미국인 고객 4450명의 정보를 미국에 제공했다. 500여년간 지켜온 금융비밀주의 철칙에 금이 간 것이다.
이후 국제적 공조체제를 구축한 세계 주요 국가들의 비밀주의 철폐 요구가 이어졌다.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세피난처 국가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압박하자, 스위스 정부는 자국 은행법을 OECD기준에 맞추기로 합의했다. 스위스가 자국 은행들의 금융 비밀주의를 사실상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그러자 세계 각국에서는 스위스와 자국민의 금융계좌 등 금융정보를 교환하는 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독일과 영국 정부도 스위스 정부와 양자 협약을 통해 자국민 명의의 스위스 은행 계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조세협정을 맺었다.

우리나라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지난 2010년 12월 우리나라와 스위스는 정보교환 조항이 담긴 개정 조세조약에 양국이 서명했고, 그후 1년 7개월 만인 지난달 25일부터 이 조세조약의 효력이 발휘됐다. 한국인들이 스위스 비밀계좌에 숨겨둔 돈을 국세청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보 교환은 국세청이 국내 탈세 혐의자 명단을 넘기면 이들이 보유한 스위스 내 모든 금융계좌 정보를 받는 식으로 이뤄지게 된다. 이번 개정안의 소급적용 시기는 지난해 1월 1일이다. 그 전에 개설된 계좌라 해도 지난해 1월 1일 현재 운영 중이라면 관련 정보를 요구할 수 있다.

다만 모든 계좌정보를 일거에 넘겨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무조사에 필요한 선별적 정보만을 요청ㆍ제공받게 된다. 그러나 이를 통해 국세청이 역점을 두고 추진중인 역외탈세 세무조사에 획기적 전기가 마련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국내에서는 역외탈세 근절을 위한 해외금융계좌 신고제가 운용되고 있다. 금융계좌 잔액이 연중 하루라도 10억원을 넘었다면 그 다음해 6월까지 관할 세무서에 자진 신고해야 한다.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 처분에 더해 세무조사를 받을 수 있다.

올해 해외금융계좌 신고를 받은 결과 652명이 5949개의 계좌를 신고했다. 신고 금액은 무려 18조6000억원에 이른다. 신고제가 처음으로 시작된 지난해 신고금액(11조5000억원)에 비해 62% 급증했다. 신고 인원도 24% 늘었다. 특히 스위스 계좌 신고액이 지난해 73억원(5명)에서 올해 1003억원(10명)으로 14배 가까이 늘었다. 한승희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은 "스위스 은행 계좌에 대해 고액 자산가들이 신고로 전략을 바꾼 데는 한ㆍ스위스 조세조약 발효의 영향이 크다"며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철저한 조사를 통해 역외탈세 근절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정보교환 자료, 외국환 거래자료 분석을 통해 이번에 해외 금융계좌를 신고하지 않은 혐의자 41명을 추려 기획점검에 착수했다. 첫 조사가 실시됐던 지난해엔 미신고자 43명을 적발해 과태료 19억원을 물리고, 세무조사를 벌인 바 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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