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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카페 문닫은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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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속도를 늦추는 게 우선이었다"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4년전 한산한 서교동 주택가. 참 장사가 안되는 커피숍이 있었다. 주택가 이면도로에 위치한 이 가게는 '홍대 프리미엄'이 무색하게 손님이 뜸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이 2700원, 그러나 하루 매출이 2~3만원에 불과한 날이 대부분이었다.
이 사연은 바로 31살 동갑내기 김영미(가명)씨와 윤호승(가명)씨의 얘기다. 두 사람은 20대시절 커피의 매력에 빠졌다. 나이는 같지만 김영미씨가 커피에 있어선 좀 더 선배다. 김씨는 스무 살에 윤씨는 스물다섯 살에 바리스타 일을 시작했다. 같은 커피숍에서 일하다 만난 두 사람은 커피에 홀렸던 것처럼 서로에게 이끌렸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다. 둘 다 홀어머니를 부양하며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것. 연인은 더 나은 수입이 필요했고 지난 2008년 겨울, 몇년간 성실하게 모은 종자돈 2000여만원과 마포구에서 지원하는 소상공인 창업대출금을 더해 아담한 커피숍을 차렸다.

둘은 이 가게에 모든 걸 쏟았다. 인테리어 비용을 아끼려 직접 벽돌을 쌓고 페인트를 칠했다. 국내에 2~3대만 있다는 로스팅 기계를 사들여 고급 원두를 뽑았다. 유기농 계란과 밀가루를 반죽해 구은 쿠키와 인공시럽을 넣지 않은 과일주스 등 다른 곳에 비해 원가비용만 1000원 이상이 더 들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 '진짜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과정을 손님이 볼 수 있도록 한 오픈형 주방도 특징이었다.
하지만 매출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고 주민들로부터 오해도 많이 받았다. 김씨는 "'부모 잘 만나서 어린 나이에 카페 차리고 산다'는 등 사실과 다른 소문들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결국 정성이 통하는 날이 왔다. 가랑비 적시듯 하나둘씩 단골이 늘며 매출도 덩달아 올랐다. 지난해 여름엔 하루 매출이 80만원 안팎이 될 정도로 바빠졌다. 둘이 감당하기엔 벅찰 정도로 손님이 많은, 소위 '핫 플레이스'가 된 것이다.

사업적인 성공이 싫진 않았지만 작업 속도가 빨라지면서 여유와 즐거움도 함께 잃었다. 몸을 축내가며 일하던 윤씨는 급기야 2011년 8월 혈소판 감소증에 걸렸고 일을 하다 쓰러지는 일까지 생겼다. 그로부터 꼭 일주일 뒤 두 사람은 가게를 접기로 결심했다.

김씨는 "삶의 속도를 늦추고 몸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었다"면서 "결코 돈이 넘쳐나서 여유를 부린 것은 아니다. 다만 즐기던 일이 어느 날 숨 가쁘게 처리해야 하는 '일'로 변질됐을 때 멈춘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가게를 정리한 후 두 사람은 윤씨의 몸이 회복되자마다 저축한 돈을 털어 여행을 떠났다. 다시 시작할 힘을 얻기 위해서다. 올 3월에는 드디어 꿈같은 결혼식을 올렸다. 단골손님이 30여명이나 결혼식 하객으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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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간의 재충전을 마친 이들은 지난 6월말 새로운 곳에 커피숍을 열었다. 첫 번째 가게와 비슷한 규모다. 먼저와 마찬가지로 직접 가구를 사들이고 페인트를 칠하고 전구 하나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두 번째 보금자리다.

부부가 무엇보다 중시하는 건 '여유'다. 부부의 가게를 찾는 손님들도 이곳에서 느리고 여유로워진다. 하루 종일 카페에 머물다 가는 이들도 있지만 부부는 이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

이들은 아직도 '너무 젊은 나이부터 편한 사업을 하는 것 아닌가', '팔자 좋다' 등의 편견이 담기를 종종 듣는다. 그럴 때면 당연히 속이 상한다. 한마디로 요즘 세상에 안 맞게 너무 여유를 부린다는 비아냥거림이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부부는 "생계를 유지하고 약간의 저축을 할 수 있을 정도라면 조금은 천천히, '슬로우 라이프'(Slow Life)로 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장인서 기자 en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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