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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詩]나희덕의 '국밥 한 그릇'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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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오늘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는/전화를 받고 역으로 달려갔다/배가 고팠다./죽음의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느낀 것이 시장기라니 … 국밥에는 국과 밥과 또 무엇이 섞여 있는지,/국밥 그릇을 들고 사람들이/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둘러 삼키려는 게 무엇인지,/어떤 찬도 필요치 않은 이 가난한 음식을/왜 마지막으로 베풀고 떠나는 것인지,/나는 식어가는 국밥그릇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나희덕의 '국밥 한 그릇' 중에서
■ 작가 이문구 선생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시인은 광주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허기를 느꼈다. 문단의 느티나무같이 여겼던 그의 죽음 앞에서 그녀는 국밥 한 그릇을 서둘러 삼켰다. 나희덕은 숟가락으로 국밥을 떠넣으며 국과 밥 말고 또 무엇이 섞여 있는지를 생각한다. 반찬도 필요없는 가난한 음식을 건네는 망자의 손길을 느낀다. 국밥과 인간 사이, 내장과 식욕 사이, 혹은 죽음과 삶 사이에 문득 훅 끼쳐드는 음식 비린내가 있다. 어느 기자는 어느 만우절날에 장국영이 자살했다는, 거짓말 같은 소식을 들었을 때, 갑자기 간장게장이 미치도록 먹고 싶었다고 어딘가에서 적고 있다. 그 비릿한 냄새가 목숨의 틈새를 넘나들면서, 먹는다는 일이 원시의 신성(神聖)을 회복하는 찰나처럼 거룩하게 빛난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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