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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가격표시제 첫날]"제대로 알고 정책 만들어라" 아우성

최종수정 2012.07.02 10:52 기사입력 2012.07.0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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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표시제 첫 시행한 남대문 가보니
-"바가지 상술은 포장마차·콜밴택시뿐"
-탁상행정 논란...첫날부터 엇박자

[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 "가격 표시제? 좋아, 좋다고. 대신 남대문에서 한 번이라도 장을 보고 어디서부터 바가지가 시작되는 건지 알아보고 정확히 타깃을 잡아서 그런 소리를 해."
1일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속옷 의류 도ㆍ소매업을 하는 윤모(50)씨는 "바가지 근절을 위한 가격 표시제에 백번이고 천 번이고 동참한다"면서 "하지만 엄한(애먼의 경북 사투리) 곳을 타깃으로 잡지 말고 바가지 상혼이 일어나는 곳을 정확하게 꼬집어내라"며 격양된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바가지가 시작된 곳은 포장마차, 콜밴 택시였다"며 "4인분에 30만원씩 받는 등 진짜 바가지가 시작된 곳을 잡아야지 엉뚱한 곳부터 가격표시제를 하라고 한다"며 "한번이라도 남대문에 와서 직접 사먹어보고 사입어보고 정책을 시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가 1일부터 서울 남창동 남대문시장 일대에 '가격표시제'를 도입했지만 상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날부터 남대문시장 내 40개 상가 6100개 점포 중 모든 소매점포는 개별 상품에 가격을 표시해야 한다. 개별상품에 라벨ㆍ스탬프ㆍ꼬리표 등의 방법으로 '판매가 ○○원' 등으로 표기토록 한 것. 이렇게 하면 외국인 관광객 등 남대문 쇼핑객들이 가격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바가지를 쓰지 않고 물건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여지없는 '탁상행론'이라는 지적이 거세게 일었다. 이날 실제 가격을 표시해 둔 업소는 손에 꼽을 정도로 참여율이 극히 저조했다. 바가지를 근절시킬 수 있겠다는 취지에서 비롯된 남대문 가격표시제가 시작 첫 날부터 삐걱거리며 현장과 엇박자를 내고 있는 셈이다.
▲서울 중구는 1일부터 서울 남대문시장 일대에서 '가격표시제'를 실시한다며 플래카드를 붙였다. 이에 따라 40개 상가 6100개 점포 중 모든 소매점포는 개별 상품에 '판매가○○원'으로 금액을 표시해야 하지만 실제 이날 가격라벨을 붙인 점포는 거의 없었으며 '탁상행정'에 불과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볼멘 목소리가 높았다.

▲서울 중구는 1일부터 서울 남대문시장 일대에서 '가격표시제'를 실시한다며 플래카드를 붙였다. 이에 따라 40개 상가 6100개 점포 중 모든 소매점포는 개별 상품에 '판매가○○원'으로 금액을 표시해야 하지만 실제 이날 가격라벨을 붙인 점포는 거의 없었으며 '탁상행정'에 불과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볼멘 목소리가 높았다.


이날 오후 3시 반께 가격만 묻고 지나다니는 쇼핑객 뒤로 상점 뒤에서는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이는 점포 상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요새 장사가 안 돼 가끔 이렇게 상인들끼리 한잔씩 한다는 의류 소매업자 김모(46)씨는 가격표시제에 대해 "어떻게 품목 하나하나마다 가격을 일일이 붙이겠냐"고 반문한 뒤 "제대로 홍보도 돼있지 않아 가격표시제를 왜 해야만하는지 공감대가 형성돼있지 않다"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 있던 홍모(51)씨는 "가격을 붙여놓았다 해도 손님들이 그 가격대로 돈 주고 살 것 같냐"며 "'시장'하면 깎아주기도 하고 덤으로 주기도 하는 '흥정' 관행이 깊숙이 배어있기 때문에 백화점처럼 가격표에 붙은 가격대로 지불하려는 고객은 거의 없다. 표기된 가격표에서 얼마 더 깎아줄 수 있냐고 손님들이 먼저 흥정을 붙인다. 시장이 백화점과 같은 시스템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오산"이라고 말했다.

또 가격표시제가 바가지 요금을 근절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인삼 판매 전문점의 이모(40)씨는 "일단 오늘부터 모든 상품에 가격을 붙이지 않으면 벌금을 문다니…지난 일주일간 수백가지 되는 제품에 일일이 가격을 붙여놓긴 했다"며 "그래도 이게 바가지를 뿌리 뽑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얼마든지 1만원짜리 제품을 2만원에 붙여놓고 팔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가격만 표시했다 뿐이지 이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또 "손님들이 원래 가격에서 더 깎아달라고 흥정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애초부터 가격을 써 붙일 때 더 올려서 붙이는 곳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이런 제도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결국 흐지부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해서 동일한 상품의 가격을 똑같이 책정하도록 할 순 없는 일이다.

옷걸이마다 해당 의류의 가격을 표시해둔 한 로드숍 상인은 "똑같은 티셔츠라도 여기서 1만5000원이면 저기서는 1만2000원에 팔 수 있다"며 "경쟁 시장이니까 당연한 일인데 우리가 3000원 더 비싸다고 해서 바가지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마 똑같이 1만2000원에 팔면 이건 또 담합이라고 하며 달려들 것"이라며 "보다 신중하고 현실성 있게 정책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법 만들어놓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무조건 과태료 문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은 돈만 뜯어가겠다는 거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한편 '바가지 신고'라는 표시를 붙여놓고 내외국인들의 상담을 맡고 있는 남대문 인포메이션 데스크에서는 이날 바가지 관련 문의는 들어오지 않았다.

이곳 통역사 김모씨는 "그동안 불만처리 접수시 교환ㆍ환불 문제 때문에 상담해온 고객은 있었지만 바가지 때문에 찾아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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