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속옷 의류 도·소매업을 하는 윤모(50)씨는 "바가지 근절을 위한 가격 표시제에 백번이고 천 번이고 동참한다"면서 "하지만 엄한 곳을 타깃으로 잡지 말고 바가지 상혼이 일어나는 곳을 정확하게 꼬집어내라"며 격양된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바가지가 시작된 곳은 포장마차, 콜밴 택시였다"며 "4인분에 30만원씩 받는 등 진짜 바가지가 시작된 곳을 잡아야지 엉뚱한 곳부터 가격표시제를 하라고 한다"며 "한번이라도 남대문에 와서 직접 사먹어보고 사입어보고 정책을 시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에서의 목소리는 여지없는 '탁상행론'이라는 지적이 거세게 일었다. 이날 실제 가격을 표시해 둔 업소는 손에 꼽을 정도로 참여율이 극히 저조했다. 바가지를 근절시킬 수 있겠다는 취지에서 비롯된 남대문 가격표시제가 시작 첫 날부터 삐걱거리며 현장과 엇박자를 내고 있는 셈이다.
이날 오후 3시 반께 가격만 묻고 지나다니는 쇼핑객 뒤로 상점 뒤에서는 대낮에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이는 점포 상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요새 장사가 안 돼 가끔 이렇게 상인들끼리 한잔씩 한다는 의류 소매업자 김모(46)씨는 가격표시제에 대해서 "어떻게 품목 하나하나마다 가격을 일일이 붙이겠냐"고 반문한 뒤, "제대로 홍보도 돼있지 않아 가격표시제를 왜 해야만하는지 공감대가 형성돼있지 않다"고 말했다.
또 가격표시제가 바가지 요금을 근절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인삼 판매 전문점의 이모(40)씨는 "일단 오늘부터 모든 상품에 가격을 붙이라고 하고 또 안하면 벌금을 문다니…지난 일주일간 수백가지 되는 제품에 일일이 가격을 붙여놓긴 했다"며 "그래도 이게 바가지를 뿌리뽑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얼마든지 1만원짜리 제품을 2만원에 붙여놓고 팔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가격만 표시했다 뿐이지 이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또 "손님들이 원래 가격에서 더 깎아달라고 흥정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애초부터 가격을 써 붙일 때 더 올려서 붙이 는 곳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이런 제도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결국 흐지부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해서 동일한 상품의 가격을 똑같이 책정하도록 할 순 없는 일이다.
옷걸이마다 해당 의류의 가격을 표시해둔 한 로드숍 상인은 "티셔츠 한 장에 여기서는 1만5000원에서 팔면 저기서는 1만2000원에 팔 수 있다"며 "경쟁 시장이니까 당연한 일인데 우리가 3000원 더 비싸다고 해서 이게 바가지라고 할 수는 없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마 똑같이 1만2000원에 팔면 이건 또 담합이라고 하며 달려들 것"이라며 "보다 신중하고 현실성 있게 정책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법만 만들어놓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무조건 과태료 문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돈만 뜯어가겠다는 거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가격표시제에 대한 시민들 반응도 시큰둥했다.
김 전문판매점에 들어온 황모(30)씨는 "일본에 있는 지인에게 선물하려고 홍삼 제품을 몇 개 샀는데 집에 가서 제품에 붙은 가격스티커는 떼어내야겠다"고 말했다. 그는 "가격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8000원짜리라고 붙어있는 걸 선물로 그대로 보내기엔 께름칙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바가지 신고'라는 표시를 붙여놓고 내외국인들의 상담을 맡고 있는 남대문 인포메이션 데스크에서는 이날 바가지 관련한 문의는 들어오지 않았다. 이곳 통역사 김모씨는 "그동안 불만처리 접수시 교환·환발 문제 때문에 상담해온 고객은 있었지만 바가지 때문에 찾아왔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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