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우리나라에서 개통된 것은 30여년 전이다. 세계 최초로 미국에서 등장한 지는 올해로 꼭 43년 됐다. 1970년대 초에는 인터넷 사용 인구가 전 세계적으로 수백명 정도였다. 198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을 개통했을 당시에도 인터넷 사용 인구는 불과 수백명이었고 카이스트(KAIST) 전체 교수 100명 중에 인터넷을 쓰는 사람은 10명도 되지 않았다. 당시 나머지 90명은 한동안 '그것을 쓸 일이 과연 있겠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돌아보면 격세지감이 든다.
이제 인터넷은 전기, 수도, 가스처럼 생활의 일부가 됐다. 다만 전기, 수도 같은 사회 인프라는 사용하더라도 절약하는 것이 덕목이지만 인터넷은 양면성이 강하여 잘못 사용하면 중독될 수 있다. 스마트폰에서도 인터넷이 가능해지면서 한번 중독되면 평생 질환을 앓을 수 있게 됐다. 인터넷 자살 카페 사건, 논문 표절 사건 등 끊이지 않는 부작용들은 인터넷의 야누스적 양면성을 잘 드러내 준다. 부작용의 극치는 개인정보 유출과 개인 취향의 무분별한 공개에서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주민번호를 사용하고 있어 과도한 유출이 벌어지는 현상을 체질적으로 안고 있다.
인터넷이 탄생한 후 초기 20년간 거의 전산학자들만 사용하던 인터넷이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것은 공익 사상에 투철한 이 시대의 기술자요 선구자요 사상가요 철학가인 팀 버너스 리의 공로다. 1980년대 말 만학도였던 그는 미국 MIT 전산학과 석사 과정 중에 유럽입자물리연구소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그 프로젝트에는 400명의 프로그래머가 있었다. 이들이 각자 하루하루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른 프로그래머와 공유하는 일이 큰 숙제 거리였다. 공유하기 위해 종전에는 400명이 만나 회의하는 방법만 있었던 때였다. 색다르고 효율적인 방법을 버너스 리가 고안해낸다. 400명이 각자 자신의 진도를 자신의 온라인 게시판에 게시해 놓고 관심 있는 사람이 그 게시판에 들어가서 보고 나오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회의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 게시판이 오늘날 웹 혹은 홈페이지다. 버너스 리는 월드와이드웹(WWW)이라고 이름 붙인 이 기술을 개발한 그 다음 해에 세계 만방에 무상으로 공개한다. 당시 이 기술이 공개되자마자 넷스케이프사가 상용화했다. 버너스 리가 왜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1세기를 빛낸 지성인에 선정됐는지 알 만한 대목이다.
인터넷 강국 혹은 정보기술(IT) 강국을 개척해낸 한국인은 위대하다. 격동 30년이었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기치 아래 일구어낸 자타가 공인하는 IT 강국이다. 프랑스 신임 IT 장관이 한국을 이 점에서 인정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제 인터넷은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견인차다. 앞으로 '30-50' 클럽 가입 여부는 향후 인터넷 경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인터넷 경제 규모는 작년 기준 연 90조원 대다. 국제 경제연구기관 대부분이 향후 5년간 인터넷 경제 성장률 예상 1위는 단연 한국일 것이라고 의견을 모은다.
아쉬운 점은 인터넷 강국인 점은 맞지만 소프트웨어 강국은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와 한국 국방부 간의 소프트웨어 저작권 논란이 좋은 사례다. IT의 핵심 중의 핵심은 소프트웨어 엔진인 운영체계(OS)다. OS의 국산화 없이 IT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없다. 우리는 왜 못 하고 있는가. 소프트웨어 강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대선의 시기다. 집권한 정부가 공약 차원에서 이 일에 매진한다면 한국 인터넷 불혹의 나이에 이르러서는 지나간 격동의 10년을 보람 있게 회상하는 장면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문송천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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