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우리 삶의 모습 바꾸는 미래의 동력
[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공상과학(SF)소설의 '시조'인 쥘 베른은 과학기술이 폭발적으로 전진하던 19세기 말 유럽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의 작품들은 과학기술이 변혁시킬 세계에 대한 꿈을 담고 있다. 일례로 쥘 베른은 '해저 2만리'에서 현대의 잠수함인 '바다괴물' 노틸러스 호를 상세히 묘사한다. 노틸러스 호의 동력원은 '열과 빛을 공급해주는 기계의 영혼'으로, 발명 초기였던 전기에너지 이상의 것으로 설정됐다. 이 아이디어는 현대에 이르러 원자력과 맞닿게 된다. 당대의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상상력이었다. 미국에서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 이름을 노틸러스 호로 명명한 까닭이다.
이제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누구나 실감하는 것이 됐다. 과학기술은 미래를 주조한다. 과학기술을 예측하는 일은 점성술이나 예언을 대체해 미래를 그려보인다. 우리 삶의 변화는 새로운 과학기술을 미리 내다보고 대비하는 데 달려 있다.
◆미래를 내다보기=세계 각국은 미래에 '뜨는' 기술을 예측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성장을 꾀하려면 제대로 된 예측은 필수다. 또한 과학기술 예측은 국가 차원에서 비전을 제시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합의를 만드는 기반이 된다. 일례로 미국에서 클린턴 정부는 바이오 기술을, 부시 정부는 나노 기술을 강조했다.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세가 된 것은 지속가능성장이다. 일단 유망 과학기술의 밑그림을 그려 놓으면 산업 발전의 방향이 정리된다.
특정 과학기술을 지목해 내세우기도 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는 매년 다양한 분야에 걸쳐 그 해 주목할 만한 기술을 10개씩 선정해 '테크놀로지 리뷰(Technology Review)저널에 발표한다. 세계적으로 연구가 진행중인 기술 중 향후 5년 안에 사회적,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기술을 선정하고 개발도상국의 보건환경 개선같은 사회적 활용을 중요하게 본다. 미국 IBM사는 내부 연구소에서 제시되는 아이디어나 연구 프로젝트 중 5개를 꼽아 매년 발표하고 있다. 이밖에도 시장조사업체, 언론매체 등이 미래 유망기술을 선정해 내놓는다.
한국에서 최초로 과학기술예측조사가 도입된 것은 1994년 제1회 과학기술예측조사였다. '2015년까지 실현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예언된 미래 기술 1079건의 면면은 꽤나 흥미롭다. '컴퓨터/TV용 15인치 이상 컬러 LCD개발'은 1999년 실현될 것으로 예측됐고 실제로는 2000년 도입됐다. '로봇을 이용한 수술법 개발'도 예상된 2010년보다 7년 가까이 빠른 2003년에 상용화된다. 이밖에도 측면충돌 보호용 에어백, HDTV, 내비게이션 실용화 등이 예상 기술의 목록에 들어 있다. 2015년을 3년 앞둔 현재 1994년 첫 예측조사의 기술 중 42.4%에 달하는 470개가 완전히 실용화됐고 331개(29.8%)는 부분적으로 실현됐다. 경제성이나 기술적 장벽 등의 요인으로 실현이 미뤄진 기술은 에이즈 백신과 한영 실시간 자동 통역 전화 등으로 총 278개다.
현재 과학기술예측조사는 총 4회 실시됐다. 올해에는 2010년부터 2011년까지의 조사 기간을 거쳐 652개 미래기술을 도출한 제4회 과학기술예측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손석호 미래기획실장은 "아직 우리나라가 미래에 관심을 가진 지 오래 되지 않았다"며 "기술예측조사가 처음 도입됐을 당시에는 사회 변화상을 다루지 않고 기술만 나열하는 데 그쳤다"고 말했다.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다. 2000년대부터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미래예측 수요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예측의 수준이 높아졌다. 손 실장은 "(기술예측은)기업의 투자 방향이나 정부의 국가 과학기술계획 수립에 안내 역할을 하게 된다"며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 미래 바꿀 12가지 기술은?=한편 KISTEP에서는 2009년부터 매 해 '10대 미래유망기술'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모델이 된 것은 MIT였다. 손 실장은 "MIT가 발표하는 미래기술에 연구자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더라"며 "우리도 좋은 기술들을 과학자들은 물론 국민이나 정책입안자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 따라 벤치마킹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단 학자들이 모여 임의로 과학기술을 꼽는 MIT의 방식과 달리 광범위한 설문조사와 전문가 토론 등 강화된 방법론을 도입해 결과를 이끌어낸다. 수백개 과학기술을 한꺼번에 나열하는 과학기술예측조사와 달리 폭을 좁혀 '집중도'를 높인다는 의미도 있다.
창간기획을 맞아 KISTEP과 함께 삶의 질, 환경보전, 경제발전, 안보·안전 4개 분야에서 총 12가지의 미래기술을 도출했다. 이 중 흥미로운 것을 살펴보자. 디지털 홀로그래피 기술은 차세대 3D 입체영상 기술이다. 레이저광이 만나 일으키는 빛의 간섭 효과를 이용해 허공에 완벽한 상을 구현한다. 맨 눈으로도 3D 상(象)을 볼 수 있고 동영상도 가능하다. 영화 속에 나오는 장면들을 떠올리면 쉽다. '아바타'에서는 행성을 완전한 입체로 구현한 지도가 등장한다. 최근 개봉한 '프로메테우스'에서도 외계 행성의 피라미드 내부도를 대형 홀로그램으로 구축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슈퍼독감백신도 최근 연구를 통해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는 기술이다. 유행성 독감을 유발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변종은 매우 다양하다. 이 때문에 특정 바이러스마다 백신을 새로 맞아야 한다. 매년 2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변종 발생 자료를 토대로 그 해 유행을 예측하면 제약사에서 백신 생산에 들어간다. 반면 슈퍼독감백신은 한 번 맞으면 모든 종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항체를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박만성 교수는 "기존 독감 백신은 바이러스의 표면단백질인 헤마글루티닌(HA)단백질 머리 부분에 결합하도록 만들어졌으나, 최근 HA 단백질의 줄기 부분을 겨냥하는 항체 생산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HA 단백질은 막대사탕 모양으로 생겼다. 막대사탕의 머리 부분은 항체에 따라 다양한 돌연변이로 변화한다. 철마다 백신을 바꿔 맞아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최근 줄기 부분에서는 좀처럼 변이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슈퍼독감백신 개발에 한 단계 다가선 셈이다.
실시간음성자동통역기술은 현재 일부 상용화가 진행되고 있는 기술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는 한/영 자동통역기술을 개발해 제주도 관광지역이나 여수세계박람회 등에서 시범적으로 선보였다. 여행용 회화에서는 통역률이 80% 이상을 웃돈다는 설명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완전한 대화 통역이다. ETRI의 김상훈 자동통역팀장은 "자유로운 대화를 제대로 통역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 연구가 수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용자의 의도를 사람처럼 파악하고 반응하는 인공지능이 적용돼야 통역율이 올라간다는 얘기다. 이밖에도 미생물연료전지와 바이오 플라스틱, 친환경 천연물 농약 등 '녹색기술'과 의료, 전기전자, IT· 통신영역 등의 기술이 망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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