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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10억명 두통이 낫는다면 1명쯤 죽어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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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 '경제학자 철학에 답하다'는 어떤 책인지 정의내리기 쉽지 않다. 철학책일까? 경제학책일까? 두 가지를 접붙였다고 말하는 것도 썩 마땅치 않다. 이 책은 '우주는 왜 존재하며 만물은 어디에서 기원했는가'라는 터무니없이 거대한 질문부터 보호무역의 타당성 여부와 같은 주제까지 쉴새없이 넘나든다.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수학과 철학, 경제학이 교차한다. 일면 당혹스럽고 기개가 넘치는 책이다.

 저자인 스티븐 랜즈버그는 로체스터 대학 경제학과 교수다. 박사학위는 수학과 경제학으로 받았다. 그러나 자신을 가장 먼저 매혹한 것은 철학이었단다. '일생동안 철학에 매진하기로 결심했던' 10살 이후 대학에서는 우연한 기회에 수학을 배우고, 시카고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경제학도들과 어울리며 경제학 교수가 된다. 이 세 가지는 그가 경제학을 다른 눈으로 풀어내는 '교양 경제학' 책들을 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경제학자 철학에 답하다'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의 존재를 통해 우주의 존재를 논증한 그는 곧 온갖 가설을 논증할 채비를 갖춘다. 쉬운 문제는 거의 없다. 대부분 과감하고 도발적이다. 어디서든 예민하게 거론되는 종교 문제도 사정권에 포함시켰다. 랜즈버그는 신앙심이라는 건 없다고 주장하며 "꼼꼼하게 수집한 통계 자료로 대부분이 독실한 신자라는 가정을 뒤엎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신앙인이 말하는 신앙의 증거는 신이 존재한다는 '직관'이다. 랜즈버그의 시각에서 이러한 직관은 무력하다. 인지과학으로도, 사회과학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그는 망설임없이 '진정한 신앙인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른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논증을 통해 정답을 이끌어내는 데 이 책은 망설이지 않는다.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제시한 전차 문제를 들여다보자. 달려가는 전차의 선로에 5명의 사람이 묶여 있다. 스위치를 당겨 선로를 변경하면 참극을 면할 수 있지만, 다른 선로에도 1명이 묶여 있다. 스위치를 바꾸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을까? 랜즈버그는 스위치를 바꾸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목숨을 숫자로 바꿔 다루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착시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가벼운 두통을 앓는 10억명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이들이 1시간을 앓을 두통을 없애기 위해 1명을 죽여야 한다면 기꺼이 죽일 수 있다는 것이 랜즈버그의 주장이다. 그는 경제학자의 효율성으로도, 철학자의 직관으로도 같은 답에 도달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경제학과 철학이 만들어내는 변종의 사고는 어느 딜레마든 풀어낼 수 있는 '원칙'으로 귀결된다. 랜즈버그가 터득한 법칙인 '경제학자의 황금률(Economist's Golden Rule)', 줄여서 EGR이다. EGR은비용보다 편익이 높다면 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옳은 행위라는 판단의 준거를 제공한다. EGR을 아는 사람이라면 밤 늦은 시간에 시끄러운 음악을 틀지 않을 것이다.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려도 괜찮을까? "쓰레기의 악취 등으로 감당해야 하는 총비용이 버린 사람이 누릴 편익보다 적다면 버려도 괜찮다."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왜 탄소를 감축해야 하는지, 이 책은 상당히 그럴싸한 답과 함께 읽는 이의 관성을 깬다.

스티븐 랜즈버그 지음/김세진 옮김/부키/1만 6000원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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