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회의는 내년 정부예산과 향후 5년간 국가재정 운용전략을 수립하는 행사였다. 올 연말 대통령선거 결과에 따라 집권할 새 정부의 첫해 예산을 포함해 그 정부 임기 전체의 재정이 논의된 셈이다. 그러니 대선 경쟁에 돌입한 여야 정당과 예비주자들이 관심을 기울일 만했는데 실제로는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쐐기 박기 식 허리띠 졸라매기'라고 부를 만한 전략이다. 차기 대권 주자들이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 각종 복지공약을 내걸 것에 대비한 방어진지 구축이고, 다음 정부에 대한 현 정부의 항전 선언이다. 균형재정 달성을 현 정부의 업적으로 역사에 남기려 하니 이건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유럽 재정위기가 초래한 으스스한 경제적 참상을 우리 국민이 전해 들어 알고 있으니 여론의 지지를 얻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는 계산이 엿보인다.
재정을 건전하게 만들겠다는데 그러지 말라고 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임기 말년에 자기 반성은 없이 남에게만 들이대는 태도로 재정건전성을 외치는 것은 염치가 없는 태도다. 현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역사적 소명'이나 '치적'으로 삼을 처지가 아니다. 임기 초반에 불요불급한 4대강 토목 공사를 벌여 막대한 재정적자를 내고 관련 부채를 떠넘겨 공기업을 부실하게 만들고 나서 그게 가당한 말인가. 그러고서 다음 정권 첫해의 재정수지를 균형으로 맞춘 예산을 짜서 넘겨 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세입구조를 놔둔 채 지출을 억제하여 재정수지 균형을 이루고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을 낮추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억지에 가깝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GDP 대비 정부지출' 비율을 대폭 높이고 대신 과감한 증세를 통해 재정수지의 확대균형을 도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옳아 보인다. 그럴려면 국가재정 구조 전체를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인구구조와 복지수요의 불가피한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좀 더 큰 정부'를 실현해야 한다.
4ㆍ11 총선에서는 복지공약 경쟁이 벌어졌다. 그 연장선에서 연말 대선에서는 재정구조 혁신안 경쟁이 펼쳐지기를 바란다. 몸이 커져 꽉 조이게 된 옷을 좀 넉넉하게 고쳐 입자는 것이다. 살을 빼는 데는 한계가 있고, 옷에 몸을 맞추자고 뼈를 깎아낼 수도 없다. 현 정부가 말하는 '재정건전성'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우기는 이데올로기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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