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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명칼럼] 재정건전성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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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가재정전략회의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사회적 논란 없이 정부 내 행사로 지난달 말 조용히 치러졌다. '내년에 균형재정을 달성한다'는 정부의 구호만 큰소리로 울렸다. 회의를 주재한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일은 역사적 소명'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번 회의는 내년 정부예산과 향후 5년간 국가재정 운용전략을 수립하는 행사였다. 올 연말 대통령선거 결과에 따라 집권할 새 정부의 첫해 예산을 포함해 그 정부 임기 전체의 재정이 논의된 셈이다. 그러니 대선 경쟁에 돌입한 여야 정당과 예비주자들이 관심을 기울일 만했는데 실제로는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과 그가 임명한 정부 관리들끼리 다 결정해 버렸다. 그 내용은 자세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재정건전성 유지'가 가장 큰 원칙으로 정해진 것이 분명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내년도 재정 수입과 지출을 일치시키는 것을 목표로 예산을 긴축적으로 짜기로 했다. 또한 그 뒤로 흑자재정을 운영하여 현재 34% 수준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2015년부터 30% 이하로 낮춘다는 방침을 정했다.

'쐐기 박기 식 허리띠 졸라매기'라고 부를 만한 전략이다. 차기 대권 주자들이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 각종 복지공약을 내걸 것에 대비한 방어진지 구축이고, 다음 정부에 대한 현 정부의 항전 선언이다. 균형재정 달성을 현 정부의 업적으로 역사에 남기려 하니 이건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유럽 재정위기가 초래한 으스스한 경제적 참상을 우리 국민이 전해 들어 알고 있으니 여론의 지지를 얻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는 계산이 엿보인다.

재정을 건전하게 만들겠다는데 그러지 말라고 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임기 말년에 자기 반성은 없이 남에게만 들이대는 태도로 재정건전성을 외치는 것은 염치가 없는 태도다. 현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역사적 소명'이나 '치적'으로 삼을 처지가 아니다. 임기 초반에 불요불급한 4대강 토목 공사를 벌여 막대한 재정적자를 내고 관련 부채를 떠넘겨 공기업을 부실하게 만들고 나서 그게 가당한 말인가. 그러고서 다음 정권 첫해의 재정수지를 균형으로 맞춘 예산을 짜서 넘겨 주겠다는 것이다.
우리 국가재정은 전면적 수술이 요구되는 단계에 와 있다. 1997년 60조원이었던 국가채무가 김대중ㆍ노무현ㆍ이명박 3대 정부에 걸쳐 급증해 지난해 420조원에 이르렀다. 이명박 정부에서 특히 많이 증가한 공기업 부채까지 더한 공공부문(정부 포함) 부채는 880조원으로 GDP 대비 72%에 이른다. 게다가 1000조원에 육박한 가계부채가 국가재정에 언제든지 압박을 가할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했으니 연금 지급 부담도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세입구조를 놔둔 채 지출을 억제하여 재정수지 균형을 이루고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을 낮추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억지에 가깝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GDP 대비 정부지출' 비율을 대폭 높이고 대신 과감한 증세를 통해 재정수지의 확대균형을 도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옳아 보인다. 그럴려면 국가재정 구조 전체를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인구구조와 복지수요의 불가피한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좀 더 큰 정부'를 실현해야 한다.

4ㆍ11 총선에서는 복지공약 경쟁이 벌어졌다. 그 연장선에서 연말 대선에서는 재정구조 혁신안 경쟁이 펼쳐지기를 바란다. 몸이 커져 꽉 조이게 된 옷을 좀 넉넉하게 고쳐 입자는 것이다. 살을 빼는 데는 한계가 있고, 옷에 몸을 맞추자고 뼈를 깎아낼 수도 없다. 현 정부가 말하는 '재정건전성'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우기는 이데올로기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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