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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詩]김준태의 '참깨를 털면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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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정신없이 털다가/"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니라"/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 이 시는 참깨를 털면서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시인 자아의 내면과, 묵묵히 곁에서 슬슬 막대기질을 하는 할머니의 표정과 탁탁탁 거리는 소리들까지 함께 읽어야 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을 참깨를 털면서 맛보는 시인, 그것은 그러나 "아가"라고 부르며 참깨의 모가지까지 털어버릴 걸 걱정하는 할머니의 시선 안에 있다. 소시민인 나도 얌체처럼 새치기하는 차를 보거나 거들먹거리는 자를 보면, 큰 손과 큰 힘을 빌려서 보란 듯이 혼쭐을 내주고 싶은 욕망이 생겨난다. 억눌려 있어서 그렇지 나 또한 천하고 미련스런 삶의 방식들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참깨를 털듯 확 털어버리고 싶은 폭력과 권력의 욕망. 참깨 털기는 억눌린 세상에서 억눌린 자들이 품는 불온한 꿈과 한탕의 질펀한 유혹이 아닐까.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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