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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詩]정지용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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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그늘이 차고,//따로 몰리는/소소리 바람./앞 섯거니 하야/꼬리 치날리여 세우고,//죵죵 다리 깟칠한/산새 거름 거리.//여울 지여/수척한 흰 물살,//갈갈히/손가락 펴고//멎은 듯/새삼 돋는 비ㅅ낯//붉은 닢 닢/소란히 밟고 간다.

정지용 '비'

■ 비 오기 직전 풍경을 그려보라 했더니 정지용은 이렇게 그렸다. 앞 섯거니 하야/꼬리 치날리여 세우고,//죵죵 다리 깟칠한/산새 거름 거리. 이 네 줄의 행은 산새와 바람에 대한 묘사다. '앞 섯거니'는 소소리 바람의 앞에 서있는 듯한 산새 한 마리를 표현한 말이다. 바람이 산새 뒤 꽁무니로 휙 불어갔다. 그러자, 산새는 바람을 리드하는 것처럼,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데 그 풍력 때문에 꼬리가 치솟아 올랐다. 꼬리가 치솟으니 가늘게 벋은 다리가 더 잘 보이지 않는가. 이 묘사에서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저 새는 밀려서 앞으로 종종걸음을 치기까지 하지 않는가. 바람의 힘에 비하면 새의 다리는 얼마나 가늘고 부실해 보이는가. 금방 날려갈 듯 하다. 그러니 '깟칠'하다. '거름 거리'는 새를 떠민 바람의 힘을 그려낸 기막힌 스냅이다. 소름이 돋는 저 언어, 즉물적 감각 재현. 오오, 정지용. 세종 이후의 모국어 국보!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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