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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간 아파트 못살겠소"...쏟아지는 분쟁·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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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기획-공동주택시대①(상)] "하자, 만들어서라도 일단 재판부터".. 분쟁 얼룩진 아파트촌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공동주택 1000만가구 시대다. 지난 58년 서울 성북구 종암동 언덕배기에 '종암아파트'가 첫 등장한 이래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사는 시대를 맞았다. 가장 보편적인 주거방식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무주택 서민들에게는 내집마련을 위한 꿈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파트에서의 삶은 갈등과 단절 등 수많은 문제로 얼룩져 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는 찾기 어렵다. 숨차게 달려 내집을 마련하지만 그곳에는 탐욕이 이글거린다. 나누고, 서로 돕는 이웃들이 사는 것이 아니라 소유하고, 과시하는 뒤틀린 정서들이 곳곳에 만연해 있다. 아파트가 주거 개념이 아니라 투자와 소유 개념에서 오는 문제들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속속 병들어 있지만 누구도 쉽게 해답을 내놓지 못 한다. 무너진 공동체 정신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다시금 반문하게 된다. 아파트 문화에 스며든 병폐와 문제를 들여다 본다.<편집자주>
▲아파트마다 하자와 관련한 소송으로 소란스럽다. 갈수록 증가하는 하자분쟁은 실생활의 고통을 줄이려는 목적보다 돈을 받아내려는 탐욕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외관에 균열이 생긴 한 아파트단지의 모습.

▲아파트마다 하자와 관련한 소송으로 소란스럽다. 갈수록 증가하는 하자분쟁은 실생활의 고통을 줄이려는 목적보다 돈을 받아내려는 탐욕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외관에 균열이 생긴 한 아파트단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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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파트 공동체는 건설사를 상대로 지난한 분쟁에 지쳐 있다. 전국적으로 어느 아파트단지를 막론하고 '하자분쟁소송'이 그칠 줄 모른다. 집값이 떨어지고 나서 그 양상은 더욱 심화됐다. "돈 몇푼에 억지를 부린다"는 건설사와 "하자에 대해서 한 치의 양보도 없다"는 입주민들의 기싸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타협도 없고 법적 근거, 기준조차 정립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분쟁이 있는 곳마다 날파리처럼 달려드는 '소송꾼'들은 더욱 기승이다.

◇"소송하면 돈 된다"= 하자분쟁소송은 지난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해 2008년 이후 급증했다. 입주 10년 차 이내인 아파트 단지에서 적어도 1회 이상의 소송을 진행될 정도로 만연해 있다. 지난 2004년 70여건이던 소송은 최근 5년새 연간 500여건으로 늘었다. 소송은 한번 진행되면 적게는 2년, 많게는 7년 이상 소요된다.
하자 감정-재감정-항소 등으로 이어지는 분쟁은 매우 지루하게 이뤄진다. 거의 하자보수보증금 청구와 손해배상이다. 법조계는 현재 관련소송건수가 전체 2000여건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 손해배상으로 받은 돈은 입주민들이 나눠 갖는다. 일부 단지내 미관 조성이나 커뮤니티시설 등에 쓰는 경우도 있다.

한때 '가구당 수천만원씩 받았다', '소송만 하면 전부 이긴다'는 식의 소문이 아파트 촌을 휩쓸었다. 실제로 하자분쟁소송으로 가구당 수백만원씩 돌려받은 사례도 여럿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배상금은 판결이 이뤄진 단지의 가구당 평균 130만원 수준이다. 건설사로서는 대형 단지의 경우 전체 배상액이 수십억원에 이르러 사실상 경영을 위협할 지경이다. 대형 건설사별로 정확히 사례를 적시하지는 않지만 대략 20∼30여건씩 소송에 걸려 있다. 그렇다고 공개하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자칫 부실시공 논란 등으로 확대되는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분쟁소송의 주 내용은 콘크리트 균열, 결로, 누수 등이다. 그 중 균열이 70%를 넘는다. 우리 건설사들이 초고층빌딩과 초장대교량, 첨단 플랜트 등으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아파트 균열로 궁지에 몰렸다는게 다소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건설업계는 "시멘트는 시간이 경과되면 물리적ㆍ재료적 특성으로 균열이 조금씩 발생하게 마련"이라고 항변한다. 설계기준과 감리를 강화하고, 콘크리트 등 건축자재들의 품질을 더욱 높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히 시공사들은 하자보수기간 내 의무사항에 대해서는 보수 책임을 수행하고 있다. 각 건설사별로 A/S팀을 24시간 가동체제로 두고 있으며 사후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S건설 관계자는 "요즘은 건설사별로 하자가 신고되는 즉시 보수토록 사후서비스가 강화돼 있다"며 "대체로 입주 3년 이내에는 현장내에 서비스반을 두고 늘상 현장을 점검, 보수하고 있으며 그 이후에는 지역별로 정기적으로 순회하며 점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원이 발생할 경우 기업 이미지 및 마케팅에도 타격을 받기 때문에 하자보수에 많은 인력과 비용을 투입, 사전 대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도 상황은 건설사들을 결코 유리하지 않다. 하자분쟁소송으로 여전히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입주자들은 당연한 주장이라는데 왜 이들은 억울하다는 걸까?

◇"균열은 무엇이고 왜 이런 일이..."= 주택법상 공동주택 하자보수 책임은 부위별로 1∼10년의 범위안에서 보수토록 정해져 있다. 1년간 책임을 지는 분야는 가구내 마감재, 벽지 등이며 ▲석축ㆍ배수ㆍ통신설비 2년 ▲난간ㆍ엘리베이터설비 3년 ▲지붕ㆍ방수 4년 ▲계단실ㆍ엘리베이터 5년 ▲가구 내부 콘크리트벽체 10년 등이다.

하자보수 의무기간을 넘기면 소송을 걸기가 어렵다. 따라서 입주민들은 입주 5년 혹은 10년 직전에 소송을 제기하는 강우가 많다. 일단 소송이 제기되면 안전진단업체 등 입주민이 선정한 감정인의 감정서가 첨부된다. 균열의 종류는 건식, 습식, 충간, 내력벽, 비내력벽, 조적벽, 무근 콘크리트, 베란다 등으로 분류된다. 여기서 분쟁은 법규상 허용 균열폭 이상 갈라졌느냐 여부를 다투는 문제가 된다.

헌데 감정서에 나타난 균열보수비는 천차만별이다. 감정인마다 수량측정방법, 보수공법, 보수단가, 보수의 필요성 여부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 어느 방법을 적용하는지에 따라 그 범위는 매우 자의적일 수 있다. 정홍식 법무법인 화인 대표변호사는 "가령 도장만으로 보수가 가능한 균열일지라도 감정인에 따라 도장 방법을 페인트 뿜칠, 롤러칠, 붓칠 등을 다르게 적용할 수 있고, 횟수도 1, 2회 차등적으로 판정한다"며 "공동주택 1개동을 100명의 감정인이 감정한다 해도 100개의 서로 다른 감정금액이 나오고, 금액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차이가 나는게 현실"이라고 설명한다. 기준이 정립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감정도 각종 장비가 동원된다고는 하지만 육안검사가 대부분이다. 건설사들이 감정서를 수긍하지 않는 것은 감정인들이 입주자들의 입맛에 맞게 작성한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적절 보수공법 및 조사방법, 보수단가 책정 등 기술적인 판단을 변호사도, 판사도, 입주자들도 할 수가 없다. 전적으로 감정인을 의존하는데 그 내용이 너무도 상이하게 나타나고 있어 건설사들의 의구심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왜 기준에 반발하는가"= 워낙 만연하고도 까다로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지방법원마다 전담재판부를 두고 있다. 하지만 전담재판부의 판사들도 전문성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감정서가 재판의 결정적 근거가 된다. 그 감정서를 둘러싼 각기 다른 입장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법조계는 분쟁이 등장하던 2000년대 초기에 입주자들의 의견과 감정서에 기초해 건설사에게 매우 불리하게 판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건설사의 의견도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럼에도 건설사들은 객관성과 공정성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이에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해 건설전담재판부 판사들과 감정인들을 통해 '건설감정실무' 기준을 마련했다. 16차례 회의, 5차례 세미나, 2회의 의견수렴 절차를 통해서였다. 하자소송 재판부는 "하자 판단은 감정인의 감정결과에 크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고 특성상 구조ㆍ공법이 비슷하며, 발생형태ㆍ보수방법이 동일한 경우에도 감정인마다 보수비 산출 방식 및 감정가격이 달라 기준을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해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자분쟁 소송이 다른 소송과 달리 까다로운 이유는 ▲동일 구조, 공법 부위에 대한 감정 판단 ▲중요한 하자에 대한 보수방법의 차이 ▲하자보수비 과다 여부에 대한 주관적인 견해 ▲하자 부위에 대한 설계도서의 상이한 해석 등을 꼽을 수 있다. 즉 하자 감정기준이 없어 문제가 발생하고 감정에 대한 불신이 초래된다는 의미다. 또 각종 조회, 감정보완, 재감정 등으로 소송이 지연되며 비용이 추가 발생하는 등 분쟁이 장기화되는 것은 물론 행정력 및 기업 업무 낭비 등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건설사들은 법원이 마련한 실무기준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실무 기준이 작성될 당시 감정인들만 참여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관련 법규와 현실에 걸맞는 의견이 함께 제출되지 않아 반쪽 기준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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