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슬러 가보면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사회는 많은 변화를 한꺼번에 겪었다.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나 했더니 곧 금융 위기가 왔다. 혁명이라 일컬어지는 인터넷 보급이 급속하게 진행되어 수많은 네티즌을 낳았다. 희귀하게만 여겼던 NGO(비정부기구)들이 펼치는 시민운동도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지방자치단체장을 시민 손으로 직접 뽑게 된 것도 1990년대 중반 이후다.
사실 인류는 원시공동체 시대로부터 자신들이 사는 거주지를 스스로 계획하여 왔다. 그러나 지배ㆍ피지배 관계가 생긴 이후로 계획은 지배자의 임무이자 권리가 되었고, 주민은 단지 계획된 거주지에 '배치'되었다. 그것은 주민으로부터 거주지를 계획하는 능력을 빼앗아 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1960년대 이후 서구에서 나타난 도시계획 과정의 주민 참여는 이러한 계획 능력을 다시 회복해 보려는 노력이자 누가 계획의 주체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 주민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 마을만들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마을만들기라는 것은 그 동네에 살고 있는 동네 주민들이 스스로 고민한 흔적이자 오랜 시간 숙성되어 나타나는 결과임이 맞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마을만들기는 좀 다르다. 아니 많이 다르다. 각 도시들은 마을만들기를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마을만들기가 지고선(至高善)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보니 그럴 만도 하다. 심지어 상당수의 도시들은 단체장, 공무원, 지방의회의원 그리고 시민조직을 통해 마을만들기를 유도하고 있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마을만들기인 셈이니 여기에 예산도 쏠쏠히 투입된다. 주민을 위한 좋은 일인데 뭐가 문제될까 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마을 만들기에 주민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주민은 별 생각이 없는데 마을을 만들어야 한단다. 주민은 별 아이디어가 없으니 외지에서 온 전문가 의견대로 마을을 바꾸자고 한다. 주민은 별 느낌이 없는데 만들어 놓고 보니 좋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