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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옛 추억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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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공예품 손 때 묻은 카페 사라지고
- 외국 브랜드 점포 속속 들어차
- 전통美는 온데간데...그냥 동네로

[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 안산에 사는 주부 송지혜(33·가명)씨는 최근 6살배기 딸 아이의 유치원 방학을 맞아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과 삼청동을 찾았다. 동네 어귀마다 1970~80년대의 분위기와 고풍스러운 멋을 내며 올망졸망 자리잡은 전통 수공예점, 손 때묻은 카페 등을 기대했지만 이내 실망했다. 외국 브랜드 점포와 대형업체들이 들어서서 고전미가 퇴색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송씨는 “2년 전에 왔을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과 삼청동을 잇는 골목. 신진 디자이너들의 편집숍과 개성있는 카페들로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곳이었지만 최근에는 대형 브랜드들이 입점하면서 점차 퇴색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과 삼청동을 잇는 골목. 신진 디자이너들의 편집숍과 개성있는 카페들로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곳이었지만 최근에는 대형 브랜드들이 입점하면서 점차 퇴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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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의 말대로 삼청동의 동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보물찾기 하듯 추억을 찾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다. 정독도서관 뒷길과 삼청동 골목 곳곳에는 국내외 대형 화장품 브랜드와 커피전문점 등이 옛 정취와 멋이 있던 수공예품 가게들을 대신하고 있다. 21일 이곳을 찾았을 때 많은 인파로 붐볐지만 삼청동만의 멋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2~3년전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이들 현대식 매장은 최근 들어서는 전통 한옥촌인 북촌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해외 화장품 브랜드인 키엘 매장. 지난해 8월 들어선 이 매장은 원래 '커피팩토리'라는 커피숍이 있던 곳이다. 친구와 함께 온 직장인 배연진(30)씨는 “커피 볶는 향이 좋아서 종종 찾곤 했는데 외국계 화장품 브랜드가 들어서 실망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 옆 건물에는 화장품 브랜드인 키엘 매장이 들어섰다.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 옆 건물에는 화장품 브랜드인 키엘 매장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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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에뛰드샵·더샘 등 국내 대형 화장품 브랜드와 LF 의 TNGT 등도 속속 입점했다. 바느질 수공예품을 팔았던 매장과 넥타이 전문점 두 곳에는 훼미리마트가 통째로 들어섰고 삼청파출소 옆에는 카페베네가, 정독도서관 앞은 커피빈이 차지했다. 지난 16일에는 아이스크림 브랜드 하겐다즈가 플래그십숍 형태로 문을 열었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삼청동의 지역 특성을 반영해 기존 매장보다 업그레이드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하겐다즈 측은 설명했다.
그렇지만 이곳 상인들은 혀를 차고 있다. 전통과 특색은 사라지고 서울 시내와 다를 게 없는 지역이 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샹베리의 모자 디자이너 임정숙(35)씨는 “대형 업체에 밀려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숍은 한 달에 2~3곳씩 없어지고 있다”면서 “많을 때는 한 골목에서 5개씩 사라지곤 한다”고 전했다. 임씨는 “삼청동은 신진 디자이너들이 자기만의 아이디어로 다양한 의류와 액세서리, 구두 등을 선보였던 곳이지만 디자이너숍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곳으로 변하고 있다”면서 “비싼 임대료를 못 이기고 인사동에서 삼청동으로 밀려왔지만 이곳도 곧 인사동처럼 될 것”이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5년간 삼청동에서 의류를 판매해온 김영희(41)씨는 “키엘·하겐다즈·에뛰드가 이곳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나”라고 묻고 “건물주들은 이들에게 높은 임대료를 받아 좋을지 몰라도 삼청동만의 멋은 차차 사라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5년 전 월세 80만원이던 이 일대가 지금은 200만원까지 껑충 뛰었다”면서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점점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148.5㎡(약 45평)인 3층 건물의 시세가 45억 원 정도로 매우 비싸다”고 말했다. 부동산 사이트에서 거래되는 168.6㎡인 2층 의류점 임대료는 보증금 2억원에 월1000만원, 권리금 8000만원 수준이다. 99㎡는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280만원이다. 임대료가 이처럼 비싸니 삼청동에서 자리를 뺄 수밖에 없다고 상인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액세서리 전문점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삼청동에서 장사하다 권리금도 받지 못한 채 떠나는 사람을 여럿 봤다”면서 “불행 중 다행인지 건물주들이 음식점만은 들이지 않겠다고 말했다”면서 “갤러리와 카페, 편집숍들이 모여 문화·예술의 거리로 통한 삼청동에 음식점까지 난무하면 그땐 정말 끝”이라며 씁쓸해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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