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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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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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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수년 전 인터넷에서 회자됐던 우화다. 세계 인구를 100명으로 가정하고 남녀의 비율부터 거주지역, 빈부격차 등의 통계를 알기 쉽게 대입한 것이다.

똑같은 프레임을 한국의 경제활동인구 대상으로 사용해보자. 한국이 100명으로 이뤄진 마을이라면, 취업해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은 59명이다. 28명은 정규직, 14명은 비정규직이다.
그런데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안정적 상장 제조기업에 다니는 정규직은 1명에 불과하다. 매출액 상위 2000개 기업으로 대상을 넓혀도 3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 한국이라는 마을의 사람들은 의아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기업이 잘 되면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는데, 이 상황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정부는 그간 대기업 위주의 성장 정책을 장려해왔다. 정책의 배경으로 내세운 것은 '트리클 다운 효과(Tricle-down effectㆍ낙숫물효과)'다. 기업이 이익을 많이 내면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고, 건전한 하청 거래와 구매 계약을 통해서 중소기업도 살아날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은 트리클 다운 효과가 사실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폭로한다. 지난 10년간 국내 2000대 기업의 매출액은 815조원에서 1711조원으로 두 배 넘게 늘어났으나 일자리는 2.8%밖에 늘지 않았다.
고용 없는 성장을 위해서는 온갖 수단과 편법이 동원됐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2005년부터 2011년 사이 매출이 27조 3837억원에서 36조 7694억원으로 증가했지만, 정규직 생산직원은 계속 3만 2000명 수준이었다. 모자라는 인력은 사내하청으로 채웠다.

같은 일을 하지만 정규직의 70% 수준의 임금을 받고 복지혜택에서는 제외되는 사내하청 인력은 2011년 말 8000명에 이르렀다. 인건비가 낮은 해외에 공장을 짓고, 명예퇴직과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사회 안전망이 취약한 한국에서 '해고는 살인'이다. 안정적 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성 안 사람'과 그렇지 못한 '성 밖 사람'의 갈등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성 밖에 '부'는 없다. 성 안 사람들은 자신들의 부를 지키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앞서 한국을 100명의 마을로 축약했을 때, '성 안 사람'은 1명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나머지 99명은 대기업이 잘 돼야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고 자신도 그 혜택을 누릴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이들 기업은 직접적인 경제적 의미가 없다(49쪽)." 왜 99명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기업의 '후견인'을 자처해 왔을까. 지은이는 대다수가 자본의 논리에 세뇌됐다고 설명한다.

미국 월가가 세계 정관계와 언론, 학계에 발휘하는 영향력은 세뇌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 월가가 정관계와 학계를 후원하고, 각국 정부는 시장 만능주의를 굳게 믿는 관료들이 장악하게 되며, 보수적 미디어가 이들의 논리를 전파한다. 이 연쇄 작용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다. 거대 자본에게서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는 "시골 촌로들까지도 시장만능주의 신봉자로 만들어버린다(79쪽)."

자본의 탐욕이 지배하는 세계는 20세기 중반 복지 사회의 근간을 흔들어버렸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설파했던 '아메리칸 드림'은 무너졌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 활동자들의 이기심이 공익 추구로 이어진다고 주장했으나 2008년 금융 위기는 그 이기심의 추악한 단면을 백일하에 드러냈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투자은행은 그리스의 분식회계를 부추겼고 구제금융 당시에도 보너스 잔치를 벌였으며 돈이 되는 일을 위해서라면 '사기극'도 서슴지 않았다.

기자 출신인 지은이는 다양한 사례와 통계를 엮어 시장경제를 바라보는 막연한 통념을 논파한다. 속도감 있는 단문에 흥미로운 사례들이 섞여 쉬우면서도 뚜렷하게 읽히는 경제서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원인 분석을 넘어 대안을 제시하는 후반부에서는 눈에 띄게 힘이 빠진다. 지은이는 외형성장과 성과만을 중시하는 경쟁 사회에서 탈성장과 공생을 무시하는 협력 체제로 넘어갈 것을 주문하며 후자의 아이콘으로 스티브 잡스와 안철수를 꼽는다. "두 경영자는 '탐욕은 선'이라는 오래된 시장만능주의 독트린을 부정한다(252쪽)"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탈성장 시대의 기업인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애플 하청업체인 중국 소재 대만기업 폭스콘의 노동실태를 고발하는 르포 기사를 실었다. 주 6일 하루 12시간씩 교대로 근무하는 폭스콘 노동자들은 건강 악화와 독성물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비판받은 국내 대기업과 다를 것 없는 실태다. 안철수 원장을 다루면서도 그의 개인행보에만 초점을 맞추는 '스타 만들기'식의 시각을 보여준다. 협동조합과 사회책임투자 등을 설명하는 내용도 이미 나와 있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어크로스/ 이원재 지음/ 1만4000원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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